202359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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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개인 날을 찍어내는 카메라 기술이 놀라운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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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라고 빵고 신부가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까딱 잘못하여 놓치면 천하의 불효자가 될 위험한 처지. 내 보기에도 그에게 너무 할 일이 많고 바빠 살레시오 수도회 일은 혼자 다 하냐?’고 놀리면 다른 회원들 부모님들도 나와 똑같은 말을 하신 단다. 말하자면 모든 회원이 한결같이 바쁘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일하며 기도하라는데, 부모된 내 귀에는 기도는 일하는 틈틈이 하라[?]’거나 일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라고 들린다.


엄마,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맨입으로?” “맨입은요? 기도도 하고 미사도 드렸는데요.” “그거 다 맨입으로 하는 거잖아?” 우리 둘은 깔깔웃었다. 여러 가지로 나를 닮아 자주 나를 깜짝 놀래키고, 그래도 수도원에서 잘 살아주어 고맙기만 하다. 아들의 기도와 미사로 우리가 이렇게 별 탈 없이 사는 중이란 건 너무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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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아들이 브로치 카네이션을 사보내며 매해 챙기지 못해도 이걸 가슴에 달고 퉁치세요.” 했다. 어제도 그 카네이션을 설합에서 꺼내 스스로 달고 보스코에게도 달아주었다. 일종의 자가발전(自家發電)’이자 자축(自祝)’이자 ‘자기위안(自己慰安)’이랄까? 하루 지나면 잘 싸 두었다가 내년 이날에 달고, 다시 작은아들의 축하를 받을 것이다, 여전히 맨입으로! 큰아들네 축하전화와 선물이며 딸들 축의금이며 서울집 살던 총각들과 여러 수도자들에게서 받은 축하전화는 빼놓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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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는 친구 체칠리아가 우리끼리라도 자축하자, 동의보감촌에 있는 산천각 식당에 함께 가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육회비법밥이라도 먹고 그 공원을 산보하자고 초대했다. 상황이 안되면 우리끼리 놀면 된다. 넓은 공원을 걷고 꽃도 보고 출렁다리도 건넜다.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보스코의 눈이 토끼 눈이 된지 일주일이 되어 함양안과에서 오라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안구 출혈이 더 심해졌다. 보스코의 어깨를 토닥이며 겁 먹지 마요, 우리 어머니 세례명이 루치아잖아요. 루치아는 눈의 수호성녀(눈을 뽑혀 순교하셨다)이시니, 하느님 나라에서 귀하디 귀한 당신 큰아들 위해 얼마나 힘을 써주시겠어요? 힘내요!.” 격려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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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마당의 꽃들도 한철을 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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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목요일 서울 가는 일정을 앞당겨 공안과로 갈까?' 우선 주치의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해 보았다. 선생님은 출혈 있는 안구를 사진 찍어 보내라 했는데, ‘각막하출혈이란다. ‘하루에 열 명 정도의 환자가 올 정도의 흔한 병으로, 피부에 멍든 것과 유사해서 피가 흡수되고 혈관이 잘 재생되면 괜찮다.’는 진단. 함양에서 처방 받은 안약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안약이 필요 없고 소용도 없다.'는 설명이다. 환자를 안심시키는 데 시간이 더 걸려 그냥 안약을 적당히 처방한단다.교과서와 이론적으로도 찢어지거나 다쳐서 발생한 경우 아니면 약이 필요 없다는 설명.


그런저런 설명을 들어 보스코를 안심시키고 아침 티벳요가를 하자니까 '의사가 안압 올라가는 일 하지 말랬잖아?' 라면서 요가를 안 하겠단다. 기막힌 억지인데 철학과 교수답다. 안구가 붉어도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고, 그의 눈을 마주 보는 내가 보기 딱하지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폐를 수술하고서도 수술했다는 기억도 없는 남자다.


여러 날 비가 내리다 맑은 날이 드니 안양 친구가 선물한 연산홍을 심기로 했다. 축대 밑에 제일 튼실한 나무들을 심고 휴천재 올라오는 길가 화단에도 심었다. 보스코는 '그제 비가 왔었으니까' 라면서 물도 안 주고 올라가 버렸다. '어제 밥 먹었다고 오늘 굶기는' . 그런데 이상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때가 되고 사람만 보이면' 다들 배고픈 사람 같아 열심히 밥을 해 먹이듯, 심어 놓은 화초들도 늘 목이 마른 듯해 자꾸 물을 준다. 보스코가 화초를 굶겨 죽일 것 같다면, 나는 배탈로 죽이지나 않을까?


오늘 오후에는 보스코가 텃밭에 내려가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에 지줏대를 박아 주었다. 농부(법적으로는 나만 농민이다)의 남편으로 시작한 그의 도움이 이제는 농부로 등극해도 될 만큼 노련해졌다. 그러다 보니 꼭 우리 둘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이젠 그도 '이걸 누가 다 먹어?' 라고 안하고 '잘되면 누구에겐가 나눠 줘야지'라며 즐거워한다.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람이 살아 있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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