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9일 화요일, 맑음
오늘 새벽 개인 날을 찍어내는 카메라 기술이 놀라운 풍경을 보여준다
‘어버이날’이라고 빵고 신부가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까딱 잘못하여 놓치면 천하의 불효자가 될 위험한 처지. 내 보기에도 그에게 너무 할 일이 많고 바빠 ‘살레시오 수도회 일은 혼자 다 하냐?’고 놀리면 다른 회원들 부모님들도 나와 똑같은 말을 하신 단다. 말하자면 모든 회원이 한결같이 바쁘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일하며 기도하라’는데, 부모된 내 귀에는 ‘기도는 일하는 틈틈이 하라[?]’거나 ‘일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라고 들린다.
“엄마,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맨입으로?” “맨입은요? 기도도 하고 미사도 드렸는데요.” “그거 다 맨입으로 하는 거잖아?” 우리 둘은 깔깔웃었다. 여러 가지로 나를 닮아 자주 나를 깜짝 놀래키고, 그래도 수도원에서 잘 살아주어 고맙기만 하다. 아들의 기도와 미사로 우리가 이렇게 별 탈 없이 사는 중이란 건 너무도 잘 안다.
몇 해 전 아들이 브로치 카네이션을 사보내며 “매해 챙기지 못해도 이걸 가슴에 달고 퉁치세요.” 했다. 어제도 그 카네이션을 설합에서 꺼내 스스로 달고 보스코에게도 달아주었다. 일종의 ‘자가발전(自家發電)’이자 ‘자축(自祝)’이자 ‘자기위안(自己慰安)’이랄까? 하루 지나면 잘 싸 두었다가 내년 이날에 달고, 다시 작은아들의 축하를 받을 것이다, 여전히 ‘맨입’으로! 큰아들네 축하전화와 선물이며 딸들 축의금이며 서울집 살던 총각들과 여러 수도자들에게서 받은 축하전화는 빼놓고 하는 말이다.
이웃 사는 친구 체칠리아가 ‘우리끼리라도 자축하자’며, 동의보감촌에 있는 산천각 식당에 함께 가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육회비법밥이라도 먹고 그 공원을 산보하자고 초대했다. 상황이 안되면 우리끼리 놀면 된다. 넓은 공원을 걷고 꽃도 보고 출렁다리도 건넜다.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보스코의 눈이 토끼 눈이 된지 일주일이 되어 함양안과에서 오라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안구 출혈이 더 심해졌다. 보스코의 어깨를 토닥이며 “겁 먹지 마요, 우리 어머니 세례명이 루치아잖아요. 루치아는 눈의 수호성녀(눈을 뽑혀 순교하셨다)이시니, 하느님 나라에서 귀하디 귀한 당신 큰아들 위해 얼마나 힘을 써주시겠어요? 힘내요!.” 격려해 주었다.
휴천재 마당의 꽃들도 한철을 보는 중
'이번 목요일 서울 가는 일정을 앞당겨 공안과로 갈까?' 우선 주치의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해 보았다. 선생님은 출혈 있는 안구를 사진 찍어 보내라 했는데, ‘각막하출혈’이란다. ‘하루에 열 명 정도의 환자가 올 정도의 흔한 병으로, 피부에 멍든 것과 유사해서 피가 흡수되고 혈관이 잘 재생되면 괜찮다.’는 진단. 함양에서 처방 받은 안약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안약이 필요 없고 소용도 없다.'는 설명이다. 환자를 안심시키는 데 시간이 더 걸려 그냥 안약을 적당히 처방한단다.교과서와 이론적으로도 찢어지거나 다쳐서 발생한 경우 아니면 약이 필요 없다는 설명.
그런저런 설명을 들어 보스코를 안심시키고 아침 티벳요가를 하자니까 '의사가 안압 올라가는 일 하지 말랬잖아?' 라면서 요가를 안 하겠단다. 기막힌 억지인데 철학과 교수답다. 안구가 붉어도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고, 그의 눈을 마주 보는 내가 보기 딱하지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폐를 수술하고서도 수술했다는 기억도 없는 남자다.
여러 날 비가 내리다 맑은 날이 드니 안양 친구가 선물한 연산홍을 심기로 했다. 축대 밑에 제일 튼실한 나무들을 심고 휴천재 올라오는 길가 화단에도 심었다. 보스코는 '그제 비가 왔었으니까' 라면서 물도 안 주고 올라가 버렸다. '어제 밥 먹었다고 오늘 굶기는' 격. 그런데 이상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때가 되고 사람만 보이면' 다들 배고픈 사람 같아 열심히 밥을 해 먹이듯, 심어 놓은 화초들도 늘 목이 마른 듯해 자꾸 물을 준다. 보스코가 화초를 굶겨 죽일 것 같다면, 나는 배탈로 죽이지나 않을까?
오늘 오후에는 보스코가 텃밭에 내려가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에 지줏대를 박아 주었다. 농부(법적으로는 나만 ‘농민’이다)의 남편으로 시작한 그의 도움이 이제는 농부로 등극해도 될 만큼 노련해졌다. 그러다 보니 꼭 우리 둘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이젠 그도 '이걸 누가 다 먹어?' 라고 안하고 '잘되면 누구에겐가 나눠 줘야지'라며 즐거워한다.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람이 살아 있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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