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7일 목요일. 맑음


26은빛나래단이 남해에서 뭉쳤다. 23일은 내 생일, 25일 임마르코 신부님 영명축일, 그리고 남해형부네 결혼기념일. 거기에 부활절 '엠마오소풍'까지 겸하기로 미루가 한데 모아 잔치를 벌였다산에 사는 사람들의 소풍은 당연히 바다! 푸른 물결이 팔을 벌려 '산사람들'을 반긴다. 형부도 바다를 닮아 팔을 벌려 우리를 안아준다. 그이가 남해에 살다 보니 지리산 사는 우리가 이리도 자주 초록의 산과 푸른 바다를 오가며 원 없이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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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섬 초입 '달반늘'이란 동네에서 바닷장어구이를 먹었다. 돌판에서 자글자글 구워지는 모양이 눈요기만으로도 즐겁다. '달반늘'이란 '보름달도 반정도 걸려서 보이고, 가던 달도 쉬어간다'는 뜻이란다. 창밖으로 바다 내음을 맡으며 만난 음식을, 그것도 좋은 벗들이랑 함께 먹으니 기분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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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가까이 있는 '카페 샘성'은 바로 창문 앞에 남해 바다가 펼쳐진 곳이다. 더구나 커피값도 3500원으로 '착했다'. 그집 과자와 빵도 괜찮았는데 내가 전날 구워 간 케이크와 스콘을 나눠 먹었다. 다과를 하며 '우리 은빛나래단 방송국' 파스칼 형부는 끊임없이 재미진 이야기로 과식한 우리 위장에 엔돌핀을 팍팍 뿌려준다.


올해 바다에서 수익이 좋아 그 동네 어업조합(형부가 조합장이다!)이 한 집에 400만원씩 나눠 주었단다. 그 소식이 나자마자 도회지 사는 자식들이, '손주 녀석 친구들은 모두 필리핀에 영어 연수를 가는데 돈이 없어 우리 애만 못 보낸다.' '집세를 올려 달라는데 돈을 박박 긁어도 한 500이 모자란다.'는 식으로 그 돈을 모두 홀가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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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는 노인들도 남해 바다 사는 노인들과 똑같다. 고추 농사를 짓거나, 노인수당이 나와도, 심지어 면에서 주관하는 '노인 일자리'로 번 일당도 한 푼 안 쓰고 꼭꼭 모았다가 자식들에게 몽땅 내어 준다. 부모에게서 살가죽만 빼고 속을 싸악 갉아먹는 게 호박 속 애벌레들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하기사 걷지도 못하고 온몸으로 땅을 기면서도 농사를 짓는 어무이 아부이 보람은 '조금치라도 새끼들한테 보태주는 데'에 있으니 어쩌면 '쬐다 홀가가는' 자식들 욕심이야말로 저 노인들에게 기역자 허리나마 움직이게 만들고 늙은 나이를 살아갈 명분을 제공하는 효도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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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일요일에 내가 서울 갈 일이 있어 빵고신부에게 잠깐 들르겠다 니까(두 아들이 내 중고 핸폰을 바꿔 주기로 사 놓았다며 작은아들이 핸폰 정보를 옮겨 담아주기로 했다), "(그가 지도하는) 청신연 애들이 '엄마표 샐러리스콘'을 너무 좋아하니 혹시 좀 해다 주실 수 있어요?" 물어온다. "물론, 어렵지 않고 말고!" 전화 받는 대로 부리나케  함양읍에 나가 샐러리스콘 만들 자료를 사왔다


정말 어미라는 건 바다나 산이나 젊으나 늙으나 모두 거기서 거기다. 만약 울 엄마가 부탁하셨더라면 해드리면서도 속으로 툴툴거리지 않았을까, 엄만 내 부탁에 얼씨구나 반기며 해주셨을 테고? 하느님께로부터 시작해서 사랑이 아무리 '내리사랑'이래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내 양심이 쬐끔 찔린다.


맑은 햇살에 휴천재 마당의 늦철쭉이 무지 곱다. 먼 옛날 강북구청장실에 선물 들어왔던 화분 둘을 친구 말남이가 얼른 나에게 챙겨주었는데, 친구가 가고 나서도 무던히 질긴 명을 가지고 노지에서 겨울 추위에 죽었다 봄에 살아나기를 몇 번 거듭하더니 이젠 이곳 기온에 적응하여 해마다 곱게도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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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사는 정바울씨(내 일기 패친)가 쓰던 전동분무기(경농산업 제품)를 몇 해 전에 선물한 적 있다. 한 해는 그럭저럭 썼는데 통이 망가져 제조회사에 보냈더니 아예 새 통을 보내 주었다, 거저! 그런데 올 해 배밭을 소독하다 보니 통을 호스에 연결하는 부분에서 또 소독약이 샜다. 다시 경북 영천으로 AS를 보냈더니만 바로 고쳐 보내 오늘 도착했다. 수리한 통과 호스를 연결할 재주가 없어 전화를 하니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줘서 '완전 수리'가 되었다. 나처럼 끈질긴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저렇게 인내로이 고쳐주는 기업과 담당기술자가 있어 대한민국이 버티고 서 있다.


대통령이 미국 가서 '아메리칸 파이'를 노래한다? 벌주기로 입건한 사람들 불러놓고 온종일 큰소리치다 저녁이면 술집으로 몰려가서 젓가락 두드리던 버릇이 외국 정상과 귀빈들을 초빙한 오만찬마저 '가라오케'로 만들었나? 역시 '피는 못 속여' 라는 장탄식이 절로 난다.


[한겨레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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