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0일 화요일. 맑음


일요일 점심을 장만하는데 갑자기 전기밥솥 불이 나간다. 둘러보니 방과 마루 전등도 냉장고도 생선 굽던 소형오븐까지 깜깜이다. 환자에게 밥을 먹여야 하는데 난감하다. 우선 가스렌지에 데우고 굽고, 남은 반찬을 찾아 냉장고 문을 연다정전된 냉장고 속은 커다란 바닷짐승의 아가리 속처럼 막막한 절망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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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보스코 밥을 챙겨 먹이고 옆집 상황을 본다.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집집마다 에어컨이 열심히 열기를 실어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집만 정전. '02 123' 한전 고장신고 번호. 신고를 접수한 교환원이 두꺼비 집을 살펴 내려간 스위치 없는지 점검하라더니, 계량기 있는 데로 가서 숫자가 나와 있나 살펴 보란다. 아무 글자도 안 보인다. 옆집 계량기들에는 빨간 줄에 까만 글자가 선명하게 달리기를 하고 있. “그렇다면 고객님 집안의 문제가 아닙니다.”라면서 기사들이 당장 출동한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반 시간쯤 지나 빨강사다리차가 마을길에 들어 섰다. 우리들의 용맹스런 마징거 태권V 같다. 출동 속도에 감탄하고 계량기만 보고도 골목 변전통에서 우리 집에 들어오는 전선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낸 한전 신고센터 젊은이가 대단히 보인다. 사다리차로 올라가 변전선을 만지던 기사가 , 이제 집에 가셔서 전기 들어왔나 가서 보고 오시죠.” 한다. 집에 들어와 보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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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수도, 가스 등 실생활과 연관된 모든 시설이 평소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다 하나라도 끊기면 그 난감함이란 절망에 가깝다일요일임에도 이렇게 속히 달려와 해결해주는 한전이 있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어제 월요일 솔밭 병원에 가서 보스코는 회복을 위해 마지막으로 영양제를 맞고 나는 다리에 물리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강력분으로 처방해준 약을 복용하니 오늘은 무릎의 통증이 덜하다. 막내딸 '꼬맹이' 말대로 테라스에 나가 무릎 혈에 뜸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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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에 우리 집 옆 공터에 근린공원을 만드는 현장소장이 내게 전화를 했다. 비탈에 세운 자기네 공사 트럭이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뒷걸음치다 우리 담장을 받았단다. 담이야 고치면 되지만 사람이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 30년이 넘도록 벽돌새에 금 하나 안 가고 단단히 우리를 감싸준 담장이지만 사고로 부서지고 새로 쌓고 해야 한다. 형태를 가진 것이라면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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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장소장이 알선한 보험회사에서 보낸 조적팀이 와서 부서진 벽돌담을 하루에  쌓아 새 담처럼 만들어 놓고 갔다. 장인(匠人)들의 노고 없이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지 궁금하다. 자기들처럼 5, 60대가 아니면 벽돌 쌓고 타일 붙이는 기술자들의 대가 끊겨간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책상에 앉아 키보드로 하는 직업만 찾지 기술직이나 현장 노동은 철저히 기피한다는 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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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째딸 순둥이’가 자기 식당 부엌에서 미끄러지며 크게 다쳤단다. 발가락 다섯 개가 다 탈골을 하고 인대는 끊어지고 발등의 뼈는 두 토막 나서 철심을 세 개나 박아야 한단다. 식당일이라는 게 얼마나 바삐 서두르면 저렇게 몸을 내던져야 하나 가엽기도 하고 속도 상한다. “주님, 한 평생 우리를 성하게 해 주소서.”라는 기도가 요즘 내 주변에서 갈수록 절실해진다.

회복기여서 보스코가 잠을 푹 자야 하는데 밤낮이 바뀌어 내 근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초저녁엔 소파에 누워 있거나 침대로 옮겨 한 소금 하는데 몸을 뒤척이다 수술 통증 때문에 깨고 나면 그때부터는 밤새  흔들의자로, 소파로, 침대로 옮겨 다니며 잠을 청하지만 소용이 없단다. 마악 아우를 보고서 엄마 뺐긴 어린애가 베개 들고서 이 방 저 방 잠동냥 다니는 모습이랄까? 흔들의자에 앉으면 그래도 통증이 가셔서 편하다며 그 의자에 앉은 자세로 비몽사몽하다 새벽을 맞곤 한다. 중딩 1 나이에 엄마 여의고 한때 몽유병에 시달렸다는 보스코의 어린 시절이 눈에 밟혀 나도 눈이 떠지면서 그의 뒷모습을 쫓느라 밤잠을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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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와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일이 생기고 일이 일어난다. 어제는 정수기 기사가 일년에 한번 필터를 교체하러 왔고, 오늘은 보스코의 양압기 기사가 와서 새 양압기로 바꿔주고 갔다. 양압기가 그의 폐암 발생의 원흉처럼 의심받는 요즘이지만 그의 야간 무호흡증이 계속되면 안 쓸 수도 없어 우산장수와 짚신장수를 아들로 둔 어미의 심경이 된다. 담장 무너진 사고나 집안 정전이 우리 없을 때 일어났다면 이 무슨 재앙이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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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이 사 보낸 손가락 골무로 보스코의 수면 중 산소포화도를 간간이 체크하는 중이다. 한목사더러 갤럭시 워치4’(수면무호흡증이나 산소포화도까지 체크한다나)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오후 그 시계를 들고 왔다. 보스코의 아픔을 걱정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병고에서도 행복하기만 하다. 큰아들과 작은아들도 매일 전화를 해서 우리 둘만으로 외롭지 않게 해주고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는지는 지인들의 그 많은 안부 전화에 담겨 있음을 새삼 체험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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