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8일 일요일. 맑음


가을 한나절 따가운 햇살은 쌀 한 말이란다. 밤에는 서늘하고 낮에는 뜨거워야 곡식이 야물게 익는다. 뜨거운 햇살 속에 서서 빙그레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내려다보던 문하마을 강구장이 생각 난다. 요즘이면 휴천재 옆 벼도 누렇게 익어가고 산언덕에서도 서향으로 넘어가는 해에 대추와 감은 더 붉어지고, 윤기 나는 알밤은 가시 둥지를 터뜨리고 떼구르르 언덕을 구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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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그때쯤이면 구장님이 내게 한번씩 끌탕을 했다. “사모님, 쩌기 쩌 저 벗나무 좀 자릅시다.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봄철 한때 꽃 보자고 넘어가는 해를 가려 우리 논에 해가 한뼘도 덜 든다고요.” 밤이면 벼도 잠을 자야 하는디, 외등이 켜 있으면 성가셔 한다고요.” 라며 휴천재 올라오는 길에 가로등 설치를 한사코 막았다. 보다 못한 유영감님이 그 까이꺼 쌀 한 됫박 덜 먹으면 되지, 이웃끼리 서로 양보하며 사는기라.” 라면서 당신 논 가로 땅을 내줘 문상마을로 올라가는 초입에 가로등이 설치되었고 덕분에 우리 텃밭도 정자도 좀 환해졌다.


가을이 깊어지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남은 우리도 인생의 탈곡을 향해 고개 를 숙여야 한다. 보스코의 이름자 염(: ‘곡식 일을 염[또는 임]’)벼 화()’ 변에 생각염()’자여서 벼 이삭이 영글수록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기는 모양을 연상시켜서 인생의 가을걷이가 다가오는 나이에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뭔가 깊이 생각하는 눈길로 조용히 미소 짓는 그의 표정은 주변 사람들이 보스코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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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보스코와 덕성여대 약초원에 꾸민 '우리 생활 가까이의 식물들'이 심어진 텃밭으로 산보를 갔다. 예전 로마에 살 때 관저 청소를 맡은 스리랑카여자 아이샤가 고향 채소라며 가끔 가져다 줘서 풋고추 대신 졸여 먹던 오크라가 꽃과 함께 조랑조랑 달려 있었다. 대부분 초록색인데 붉은색 오크라는 처음 여기서 보았다.


아이샤는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아들과 둘이 살았다. 오전에는 관저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어느 가정집 청소를 했으니 투잡을 뛴 셈이다. 그렇게 벌어야 겨우 집세내고 모자간에 겨우 먹고 살며 30만원쯤 저축을 한다고 얘기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여 내가 제일 믿던 고용인이었다. 관저에 돈이나 귀금속이 굴러다녀도 꼭 내 침실 화장대에 갖다 놓고 마담, 관저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니 잘 챙기세요.”라고 조심성 없는 나를 챙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보스코 후임대사의 부인이 자기 돈이 없어졌다고 혐의를 씌워 그미를 해고해 버렸다. “6개월만 지나면 연금을 탈 수 있으니 조금만 사정을 봐주세요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단다. ‘연금도 연금이지만 저를 의심하는 게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라고 훗날 만난 나에게 하소연했다. 외교관이든 사업차든 이국땅에 살면서도 가난한 나라 사람은 부정직하다는 선입견을 품은 사람들을 퍽 많이 보았다. “아이샤, 내가 너를 잘 안다, 5년을 함께 살았는데 너처럼 올곧은 사람은 드물다. 그 돈 네가 안 가져갔다고 나는 안다.” 2012년 로마 갔을 때는 그미를 따로 불러 위로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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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은 담양 천주교 묘지에서 노신부님의 유해 안장식이 있었다. 보스코가 병구완중이라 참석은 못하고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한솥밥을 먹은 송기인 신부, 정영규 신부, 이정헌선생, 김수복씨, 그리고 찬성이 서방님과 훈이 서방님이 신안동 미사(11)와 담양 묘지 안장식(13)에 참석토록 조정하였다. 지난 413일 돌아가셨지만 당신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한 터라서 며칠 전 화장유골을 가톨릭의대에서 반환받아서 어제 담양천주교 묘지 살레시안 구역에 안장한 것이다. 우린 휴천재에 내려가는대로 별도로 성묘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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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요일 오후 2시에 미루네 회사 김이사가 와서 지난 18년간 우리 가족이 되어준 소나타를 몰고 갔다. 오랜 세월 내 발이 되어 온갖 고생을 다한 소나타가 골목 밖으로 멀어져갈 때 가슴 저 밑바닥에서 통증을 느낀다. 그나마 우리 귀요미네 집에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터이라서 모자란 딸 시집보내는심경으로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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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축일 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45

오늘 두 주간 만에 본당 미사에 갔다. 5분 거리인데 보스코가 수술 후유증으로 새색시 걸음을 하고 나는 무릎이 아파 거북이 걸음을 하니까 20여분 전에 집에서 떠났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주임신부님은 축일에 맞춰 핏빛 제의를 입고서 사람마다 지고 가는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 강론을 하셨다. 어떤 공동묘지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묘석이 붙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빈 무덤이더란다. 인생이 고해(苦海)라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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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빼앗기는 고통을 당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찼던 이들이 오늘 기리는 저 순교자들이다. 인생고를 십자가의 그늘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고통이 파멸을 가리키지 않고 구원과 영생을 가리키는데 그 이치를 터득한 이들이 저 순교자들이다.


천주교 마을을 급습하여 남녀노소를 모조리 잡아다 집단으로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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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같은 곳에서는 결박하여 집단으로 못에 빠뜨려 죽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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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두산에서는 벼랑끝에 줄세우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거나 남자는 칼로 쳐서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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