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6일 화요일 맑음


95일 새벽 몸에다 갖가지 줄과 통을 스크루지 영감처럼 주렁주렁 단 보스코가 하루 종일 지쳐 보호자용 침대에서 쪽잠을 자던 나를 깨운다. 지난 열흘간 금식과 약물처리로 변을 못 봐 어제 간호사가 좌약을 넣게 하고 물약을 먹게 했는데도 반응이 없던 대장이 한밤중에 한순간 폭발을 했나보다. 탈진한 그를 우선 샤워실에 데려가서 씻기고 새 입원복을 입혀 침대에 눕혔다. 다들 고단한 단잠에 빠져있어 아무도 기색을 못 차려서 우리 80 영감의 체면을 살렸다. 며칠 전 우리 맞은편 환자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사건이다. 입원실과 화장실 바닥을 청소하고 나니 나도 땀을 흠뻑 흘렸고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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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라 밤이면 깊이들 자고 있다. 우리 방 파월용사는 자기의 수술이나 치료비의 10%밖에 안 낸다고 자랑한다. 보훈병원이니까 국방이나 해외파병을 다녀온 분들에게 잘 해 드리는 건 당연하다. 엊그제도 (입원실을 나가) ‘박근혜지지시위에도 다녀왔노라는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3:7로 머리를 빗고 모포와 이불을 각 지게 접어 한 켠에 쌓는다. 태그끼 아재답게 지하에 내려가 ㅈㅅ일보를 사다가 근엄한 표정으로 완독한다. 신념에 찬 모습이다.

안성에서 벼농사와 포도농사를 짓는다는 파월농부는 동맥류 수술로 20일을 입원을 하고 있자니 농사걱정으로 머리가 한 짐이다. 안 사람이 쪽파를 심었다는데 그것도 못 미덥고 태풍이 오는데 논물도 빼야 하고 포도 수확도 끝내야 한다며 걱정으로 몸을 뒤척인다. 휴천재 텃밭에도 드물댁이 배추를 심긴 했지만. 배는 진이네가 따 놓았은데 과일이 너무 잘고 물까치가 입질한 게 많은데다 가을우기로 단맛이 안 들었더란다. 이젠 주변에서 보스코의 배농사를 만류하며 봄에 배꽃이나 보라고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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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사내 다섯이 한 군데 모이면 생인손 손가락 하나가 짚인다. 멀리 전라도에서 왔다는데 한 승질하여 간병인을 여럿 갈아 치워 지금은 곁에 아무도 없다. 환우 중 나이가 제일 젊은이로 우리 막내 동생과 같은 60대 초반인데 살아가야 할 날이 창창하거늘 신장투석에, 심한 당뇨에, 무릎까지 다리를 잘랐고 낼모래는 심장수술을 하러 대기중이란다.


어찌까이!’ 우리 방에 그가 입주한 첫날밤 새벽 2시 간호사를 불러 충전기를 찾아 달라자 이런 일로 절 불렀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말에 냅다 소리를 지르기에, 내가 여기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조용해졌다. 아침에 내가 말을 걸어 충전은 해야 하는데 충전기를 못 찾아 얼마나 애가 탔어요?” 했더니 머쓱해한다. 충혈된 눈에 꺼벙한 머리, 도막난 다리... 너무 가엾어 다리를 만져주며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힘들었어요?”고 말을 건네자 핑 눈물이 돌며 고마워요, 누나.”라고 나를 부른다. 참 많이 외로웠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하느님이 보시기에 우리도 다 저런 모습이겠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당신의 마음으로 받아드리게 해 주소서비는 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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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그는 섬망증의 현상으로 밤새 잠꼬대를 하는데 마취와 수술의 후유증으로 보인다. 엊저녁에는 저기 다섯, 이리와!”라던 그의 고함에, 남편에게 쥐어 살던 맞은편 침대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 여기 있어요!”라며 똑바로 일어서는 대답에 잠이 깨어 있던 나로서는 슬픈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남편을 군대 고참으로 모시고 살아온 여인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올 리 없고 차분히 샤위마저 하고 나오는데 태풍으로 낮아진 기온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담요 한 장으로 머리까지 덮었지만 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문제는 새벽에 혈압을 재러온 간호사에게 목이 아프고 감기 기운라니까 간병인 구해 놓고 당장 집에 가 PCR검사 결과를 갖고 다시 오세요.” 란다. 큰일이다. 저 무거우 분비물통과 피 고이는 팩과 주렁주렁 달린 주사 줄을 끌고 여기저기를 오갈 보스코를 두고는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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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측에서도 매일 “X병동, 코드불루!”라는 암호를 외치며 코로나 확산 방지와 싸우는 판이어서 확진을 받으면 누구나 적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폐암수술환자들이 들어찬 병동에서, 더구나 평균연령이 월남전참전용사급이어서 코로나는 큰 타격이다. 우선 지하 세븐일레븐에 내려가 간이 테스터를 사서 찍어보니 음성이다. 그걸 간호사에게 보여주고 병원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겠으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병실밖에 안 나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주치의는 오늘 보스코 몸에 붙은 모든 호스들을 떼어내고 소독하고 수술 자국을 정성껏 소독하게 해 준 다음 우리 둘을 퇴원시켜 주었다. 빵고 신부가 마지막 컴퓨터 입력까지 완료하여 보훈병원 지하에 주차시켜 놓은 새 차 아반테에다 보스코와 퇴원가방들을 싣고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맑게 갠 도봉산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니 이만한 스위트홈이 세상이 없다. 보스코가 열흘만에 기운과 표정을 되찾았다


진단과 수술과 퇴원까지 두 주 안에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신속한 치병인가! 사람의 장기를 자르고 수리하고 꿰매고 고쳐서 가장과 직장과 자연에로 되돌려보내주는 의료인들에게 깊은 경탄과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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