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2일 화요일, 흐리다가 맑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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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행에서 즐거운 일정 하나가 딸들과의 만남이다. 어제 월요일, 막내 꼬맹이는 선약이 있어 못 왔지만, ‘큰딸이엘리와 내가 데꼬 들어온 딸오드리, 그리고 내 친구 한 목사 부부와 우리 부부가 우이령길을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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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땜에 우여곡절을 겪어 점심 메뉴 짜장면과 탕수육은 김밥으로 바뀌고, 산에 올라가 먹겠다던 계획도 추운 날씨에 산에서 찬밥 먹다 소화가 예민한 어르신들이 걱정스럽다며 결국 우리집에 모여 먹게 되었다. 엘리는 김밥과 과일을 사오고 나는 잡곡밥에 나물, 따순 국물을 마련했다. ‘시장이 반찬이고, 북적이며 입성 좋은 사람들의 정이 입맛이 되어주는 자리다.


우이동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 밑에 차를 세우고 우리 여섯은 예약해 놓은 우이령길을 걸었다. 도봉산 오봉 아래 석굴암까지 왕복 15,000보 정도의 거리로 평탄하고도 아기자기한 길. 북한산 둘레길에서 이곳 산행만은 예약제여서 사람도 많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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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는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신념을 우리 딸들도 배웠나보다. 코로나로 인해 만난 지 여러 달이지만 하도 전화를 자주 하는 사이라 늘 만난 듯한 얼굴들이다. 둘째딸 순둥이는 언제나 임전태세 완비로 누가 건드리면 돌격하는 성격을 자처하는데 오늘 저녁 보스코와 얘기하다 내가 뭔가 저돌적 말투를 쓰자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순둥이엄마 맞네.”라고 놀려서 한참 웃었다. 최목사님 말에 의하면 한목사, , 이엘리, 오드리, 엄엘리 다섯 다 애니어그램으로는 ‘8유형이어서 서열만 정리되면엄청 잘 맞는 성격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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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정말 잘 지내다가도 간혹 왜 저럴까?’ 할 만큼 토라지는 성격도 있는데, 목사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나와 달라서그렇게 보이니까 그러려니이해하란다. 보스코는 우유부단하고’ ‘속 터지게 요령 없고’ ‘한없이 미루는 성나중씨로서 대표적인 9번이지만 다행히 ‘1번 날개를 갖고 있어서 판단력이 있고 결단력도 있다는 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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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어그램 전문가 부부의 평가에 빙그레 웃기만 하는 보스코 덕택에 한집에서 둘이 함께 방방거리지 않아다행이다. 보스코의 자평으로는 9번인 자기는 8번인 전순란의 밥이라나? 내가 자기에게 50여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밥을 해 먹였는데 저런 소리를 한담? 저렇게 속 터지는 남자를 사람들은 왜 나보다 더 좋아할까? 정답은 같이 안 살아봐서들 모르기 때문!’일 게다. 오후 4시가 되어 우이령을 내려와 각자 온 곳으로 되돌아갔고 헤어지면서 우리는 벌써 다시 만날 시간을 짚었다. 연말까지는 한 번 더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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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이어서 늘 혼자 병원엘 가지만 보스코의 병원 나들이에는 언제나 보호자로서 내가 동반한다. 오늘 우이동 솔밭공원 옆 서울병원에 가서 보험공단이 재촉하는 분변검사에, 독감예방주사도 맞고, 솔밭공원도 한 바퀴 돌고, 다이소에 들러 딲풀처럼 붙는 도배지도 사왔다. 서울집 지붕 틈새로 스며든 빗물이 2층 서재 천정에 몇 군데 쥐오줌처럼 번졌고, 2층 오르는 계단에도 벽지가 갈라져 있고, 2층 싱크대 앞벽은 흉하게 얼룩져 있어 세 군데 다 벽지 조각을 덧대어 발랐더니 흥부네 이불이 따로 없다.


내년이면 헐어낼 집인데 왜 단장하느냐?’는 보스코에게 세상이 내일 끝나도 난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스피노자)의 명언을 댔다. (실은 그 사람보다 1700년 전, 보스코가 전공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티티루스, 배나무를 심게나, 자네 손주들 따 먹게.라는 시구를 남겼단다.) 아무튼 40년 넘게 내 몸처럼 느끼며 살아온 집이어서 구석의 저런 상채기라도 그냥 두기엔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역시 집에 대해서도 나는 8번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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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후보의 경선 불복 난동에 화가 난 진보 측 원로들이 이부영 선생의 주창으로 민주당, 정신 차리고 하나로 뭉치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내겠다면서 보스코도 동참하라는 연락을 해왔다. 내 신랑이 어느 새 각계 원로에 들어갈 만큼 늙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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