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7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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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면 자동차 보험을 연례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별 사고도 없었는데 보험료가 팍 올랐기에 문의를 하니 나이 70이 넘어서란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교통안전교육을 받으면 보험료를 좀 깎아준다기에 공단에 문의를 했더니, 교육장 방문 전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검사를 받고서 결과지를 발급받아 지참하란다.


어차피 12월 말이면 5년 기한의 면허증(1종) 갱신도 해야 돼서 읍내에 나가 치매안심센터에 들렀다. 예전에 농업대학을 하던 건물엔 떡 하니 치매센터가 터를 잡고 직원도 엄청 많았다. 말하자면 함양군민 대다수가 노령으로 그만큼 치매센터 이용율이 높다는 말이다. 무슨 오락프로가 있는지 꿍짝거리는 소리가 하도 요란해 방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들이 의자에 앉은 채로 손만 들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안노인들 다리는 거의가 부실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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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와 나는 따로 치매검사를 했는데, 30문항의 질문에 30점을 맞았으니 우수하다는, '아직 치매는 없다'는 말이란다. 작년엔가 29점을 받았던 보스코도 이번엔 30점을 받았으니 더 명석해졌나? 늙을수록 점점 더 똑똑해지는 남자?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교부의 심오한 신학서를 해독하고 번역하고 그럴듯한 말로 표현하는 두뇌 활동을 하다 보니 아직 치매 증상이 안 온 것 같다.


우리 나이가 되니까 면허증을 갱신하려 해도 치매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니 좀 우울했지만, 만점 짜리 검사 결과 덕분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30여분 달려 집에 거의 다 왔는데 읍내 연수씨가 전화를 했다. 자기 매장에서 내가 물건을 사고 가방을 두고 갔다며 찾아 가란다! ‘이건 뭐지? 치매에 건망증 복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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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배추가 크긴 잘 컸는데 속으로 골병이 들었는지 잎 줄기가 까맣게 상하고 이파리는 노릇노릇하다. 읍내 나간 길에 농협 매장에서 일하는 창수씨에게 물어 보니 붕산 부족이 원인이란다. 붕산이야 수세미 화장수에도 쓰이는 약이라 집에 어지간히 갖춰둔 터라서 해질녘 드물댁도 올라와 두 집 배추에 함께 약을 쳤다. 그미의 소독통 분무기 끝이 자주 막혀 내가 거듭거듭 손으로 문질러 소제를 하고 다시 끼워주기를 반복하자 몹시 미안한 기색이다. “아줌마, 미안해 하지 말아요. 소독약통이 오래 돼서 그래요.” 대신 이층집 아줌마’(그미가 나를 부르는 호칭) 서울 갔다 오는 동안 "내가 밭고랑이랑 배추 밭에 지심은 다 매놀거고마." 그미 나름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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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테라스에 올린 수세미를 따고 줄기를 거둬 깔끔하게 치우자 나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줄기를 페트병에 꽂아 수세시물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과 주변 친구들에게 좋은 화장수를 마련하는 연례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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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울 가서 일곱 밤 자고 올 테니까 날짜 가는 거 잘 세고 있어요.”라는 내 말에 드물댁은 가면 보고자프니까 자주 전화 주이소. 하루 한번은 꼭.” 그미 나름의 속마음이어서 살픗 웃음이 난다. 일흔다섯 나이에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순정을 고백하는 열여덟 소녀랄까?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고향이라더니, 이런저런 인연으로 이곳 문정에 내 삶이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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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하늘은 화창하고 선선하니 여행하기에 딱이다. 아침에 친구가 톡을 보내 휴천재표 푸성귀를 채취해 오라는 전갈. '최애'하는 내 친구 부탁이라 식전에 오이, 호박, 가지, 고추, 상추, 아주까리잎, 호박잎, 루꼴라, 치커리, 방울 토마토, 케일 등을 주섬주섬 챙기다 보니 10시가 다 됐다. 한 말씀 하려는 남편에게 받는 사람이 얼마나 좋을까?’ 너스레를 떨고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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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는 관구비서로 바쁘고 주교회의 산하 위원으로도 분주하지만 답십리 하늘병원 내에 젊은이들과 함께 연 보스코 젤라또’도 책임 맡고 있다. 홍시로 샤벳을 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동네에서 구한 홍시를 갖다 주려고 그의 가게를 방문하고 (비 오는 날이라 손님이 없어 안타까워) 아이스크림을 사먹어 주고 사서 들고 나왔다.


뒤이어 노원 면허시험장에 들러 내 면허증을 갱신했다. 보스코는 나이 80이라 3시간의 교통안전교육을 받아야 갱신을 해 준단다. 코로나로 잔뜩 밀린 프로그램이었지만 '어르신이 함양에서까지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서 담당자가 딱 한 자리가 났으니 내일 10시에 와서 교육을 받으라는 특전을 베풀어줬다. 그의 면허증이야 장롱면허증(내가 벌점을 크게 받는 교통 위반을 했을 경우 대타로 나서기도 하지만)인데 그런 면허라도 갖고 있다는 게 자존심에 무슨 보탬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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