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2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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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까지 멀쩡하던 보스코가 부정맥으로 정신을 놓는다. 우황청심환도 먹고, 혀 밑에 넣는 약도 넣고 온갖 짓을 다 한 후에야 잠들었다 깨어서는 정신을 차린다. 장출혈로 고생하다가 겨우겨우 홀로서기를 했는데 하루 아침에 다시 부서져 내렸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깝다.


그래도 요추를 다친 것은 외상이니까 내장을 다친 것에 비해 다행이라고, 경추를 다치지 않고 요추를 다친 것도 다행이라고, 요추도 3,4번 아닌 1번을 다쳤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러 가지 다행(多幸)’을 끌어다 붙여서 인내롭게 넘기고 있다. 점심을 겨우 먹고는 안정을 되찾아 다시 책상 앞에 간다. 힘든 일이 연달아 생기니까 마음도 약해져 이번만 지나면 평안한 날이 오리라는 '액땜' 사상으로 위로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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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바로 옆의 한남댁 고추밭을 갈아주러 잉구가 끌고 내려온 트랙터 소리에 동네가 요란했다. 오후에는 윗동네 강주사가 내려와 밭고랑을 만들어 주니 그리도 보기 싫던 밭이 꼴을 제법 갖춘다. 강주사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오늘 우리 마누래 병원에서 데불고 나왔소.”라며 한달반 만인데 눈물 나게 좋다고 자랑한다. 그 아짐은 파킨스씨병인데 많이 진행되어 올해는 밭일을 못할 것 같다고 한숨이다. 그 부부는 윗동네에서 제일가는 일꾼으로 아줌마는 늘 소처럼 일하던 분이다. “그렇게나 부려먹어서 파싹 망가졌다요.” 라며 강주사가 자책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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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구와 강주사가 한남댁 고추밭에 고랑을 만드는데 임씨도 내려왔다. 소나무를 베다가 떨어지는 나무가지에 목을 다쳐 경추가 나갔다 6개월만에 퇴원했단다. 처음엔 의사가 전신마비가 올 꺼라고 했는데, 두어 달 만에 몸이 움직이자 재활치료를 시작하여 이제 겨우 걷는단다


한남댁이 우리집 초입에 부탄가스를 켜고서 밭을 만들어 준 남정들에게 동생이 보내준 아까운 장어를 구워 약주를 대접했다. 우리집 마당이어서 내가 김치와 술병도 내다주었다. 조용했던 동네에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나니 웬일인가 싶어 동네아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장어 한점씩을 얻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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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마당에 자라나온 와송들 새순을 잘라주었다. ‘저것들 손질해야 하는데...’ 눈은 걱정만 하다 말고 부지런한 손이 나서서 뚝딱 해치웠다. 강주사는 집으로 가면서도 집에 가면 울 각시 있다!”며 어깨춤을 추며 올라갔다. 강영감도 부인을 요양원에 보냈고 본인도 다리 때문에 몇 달째 병원신세를 지고 있단다. 


아줌마들이 떠난 자리 뒷정리를 하고 9시나 돼 저녁을 먹었다. 이번 사고로 입맛을 다 잃어버리고 먹는 일에 질린보스코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밥달라고도 않는다. 저러다 성인 대열에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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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한남댁 밭을 만들었으니 멀칭을 해야 한다. 어제 그건 아짐이 알아서 해요!”라며 수퉁맞게 한 마디 던지고 간 잉구를 그미는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자기 몸에 종합병원을 차린 아짐들이 모여와 한마디씩 훈수다. “그래도 젊은 남정이 도와야지 혼자는 몬한다.” 읍에 나가 살든 대처에 살든 자기 자식들은 아서라, 힘든다고 아껴놓고 남의 집 마음 좋은 젊은 남정에게는 뼈빠지게 일을 시키는 이기적인 오메들처럼 보인다.


나는 휴천재 올라오는 길가에 만든 꽃밭에 웃자란 꽃들을 잘라주고 풀을 뽑았다. 소담정 도메니카가 손목이 망가졌다면 자기 화원 소나무 전지 땜에 마음 쓰기에 그 집 소나무들까지 모두 전지해주었다. 5시부터 일어나 일을 했는데 10시에나 끝나 아침을 먹었다. 보스코에게 아침이 늦어 미안하다니까 자기는 아침 먹은 줄 알았단다.


9시가 넘어서 잉구가 내려와 쓰잘데기 없는 어메들을 모두 쫓아버리고 한남댁과 둘이서 그 넓은 밭 멀칭을 뚝딱 해치웠다. 누구에게나 고마운 사람이다. 동네이장 이기동씨까지 허리가 무너졌다고 밭일을 포기하고 나니 위아래 동네를 통틀어 장정이라곤 잉구 한 사람 밖에 안 남았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보스코랑 휴천강가로 산책을 하며 로사리오를 했다. 감사할 일이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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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57

일요일은 주님 승천 대축일’. ‘본당의 날야외 소풍을 준비했는데,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로 성당에서 11시 미사를 드리고 준비했던 식사는 성당 지하식당에서 먹었다. ? 예전부터 운동회나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올까? 덕을 잘 못 쌓았을까?' 식사 후에는 여러가지 프로가 있다지만 보스코의 허리가 염려되어 우리 부부는 일찍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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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늦게 미루와 이사야가 와서 휴천재 이층 올라가는 층계에 손잡이를 달아주었다. 보스코가 계단을 안전하게 오르내리게 빵기가 택배로 사 보낸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미루네 부부 덕분에 이 산속 오지에서도 평안한 삶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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