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7일 화요일. 온종일 비


월요일. 눈을 뜨며 '이 하루를 어떻게 나눠 써야 되지?'를 먼저 생각한다. 서쪽 커튼을 열고 창밖에 신록으로 무성한 지리산을 본다감동 끝에 둥지를 튼 직박구리 한쌍도 번갈아 나와서 자갈 밭에 떨어진 먹이를 물고 올라서, 다른 포식자가 없나 둘러보고는 안심이 되면 둥지로 들어간다. 알을 품는 일도 암수가 번갈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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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505. 병원에서 보스코의 아침 혈압을 재던 시간이다. 어제 아침은 134~84! 나쁘진 않다. 요즘은 약보다 그가 먹는 음식이 그의 뼈를 낫게 하는 실질적인 약임을 알기에 단백질 음료 '하니뮨'으로 그의 식사를 챙긴다. 영양식이나 개소주를 내밀 적마다 입맛이 조금도 안 돌아온 보스코가 한숨을 쉬기도 하고 짜증도 내지만 그러려니 하며 그날 몫은 다 먹인다. 꼭 먹인다.


보스코는 202291일에 폐암 수술을 하고 두 달 후 1030일에 노고단에 올라갔다. 81세 때 일이다. 인간 승리다똑같이 보훈병원에서 김두상 서방님한테 폐암 수술을 받은 동서를 돌보는 찬성이 서방님은 얼마나 더 힘들까! '징하게 짠하다.' 동서는 두 달 넘게 병원에 있으면서 음식을 거의 못 먹는 것으로 보아 보스코의 까탈은 견뎌낼 만하다.


꺾어진 허리로 걸음마 다시 배우는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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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주간 보스코를 돌보는 병원 생활로도 힘들었는데 찬성이 서방님은 남자로서 여성병실에서 두 달 넘어 어떻게 아내를 병간하는지 짐작이 간다. 동정어린 내 말에 서방님은 감옥(그는 민청학년 사건으로 3년간 형을 살았다) 속에서나, 안기부 6국 고문실을 경험한(10.26 직전 한 달을 보스코랑 남산 6국에 갇혀 있었다)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천국이라구요.” 하며 받아넘긴다. 까탈스런 아내의 뜻을 다 받아주니 동서가 평소에 보험을 많이 들어놓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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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친구가 원하는 시골 참기름 들기름을 마련하느라 창고에 보관 중이던 깨를 짊어지고 화계 방앗간으로 갔다. 주인이 나더러 깨를 씻어 물을 싹 빼오지 않았다고 지청구하기에 내가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깨를 일었다그런데 그동안 면에서의 노래교실에 함께 다니던 원기 마을 할메가 "깨는 그래 씼는 게 아니어."라며, 내 자릴 밀치고 들어와 깨끗이 일어주셨다. 그동안 내 차를 많이 얻어 탔다면서 빻아놓은 고추 가루도 두근이나 주셨다. 방앗간 주인은 기름짜는 사람이 많아 깨를 맡기고 오후에나 찾으러 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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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자기집 마루 끝에 앉아 심심해 하던 드물댁을 태워 '시상 귀경' 시켜주겠다고 함께 가자고 꼬셨다. 하루 종일 심심하던 차에 옆에 앉아 그동안 동네 얘기를 구비구비 풀어낸다. 그미는 내게 이 동네소식을 소상히 알려주는 '동아일보'다. 돌아오며 남호리 신선초 밭에 그동안 잦은 비로 풀이 얼마나 자랐나 보러 갔더니 고맙게도 경모씨가 예초기로 싸악 깎아 놓았다. 수고비야 주지만 그런 마음 씀씀이를 가진 그가 특별해 보인다. 내일은 휴천재 텃밭도 보스코 대신 깎아주겠단다. 배봉지 쌀 사람을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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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스위스 갈 기름병 8개를 포장하고 택배준비를 하고 나니 밤이 됐다. 저녁에는 리쳐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630 페이지 짜리)를 읽었다. 재미있어 밤11시까지 읽고 일기를 쓰니 자정.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전순란은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복많은 여자다.


보스코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허리가 아프면 서서 번역을 하다, 더 이상 못 견디면 침대에 누웠다, 흔들의자에 기대다, 휴천재 복도를 거니는 모습을 보인다. 다친 허리 때문에 뭐 하나 뜻대로 안되나 보다. 그런 어려움은 혼자 터득하고 해결해야 하기에 나는 그에게서 가장 먼 자리를 찾아가며 내 할 일만 한다. 그래도 내가 어디 있나 뭣 하나 가끔 와서 쳐다보고 사라진다. 부부가 서로 이리 좋은 의지처가 되니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들고 보기에 참 좋았다'라고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다. 베네딕토 16세는 인간 곧 남자를 "부모를 떠나 아내를 찾아가는 나그네"라고 정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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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택배를 부치러 읍에 가는데 심심한 드물댁도 따라 나선다. 2,7일이 함양장이니 텃밭에 심을 모종도 사고 장구경도 하니까 좋아라 한다. 가지, 오이,호박, 고추, 당귀, , 방울토마토, 큰 토마토 다 샀는데도 단돈 30,000원이다. 시장까지 따라온 사람을 그냥 보내기가 그래서 먹고 싶다는 비빔밥을 사 드렸다너무 잘 드시기에 내것도 반을 더 덜어드리니 된장찌게에 뚝딱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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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식탁을 보니 장꾼 아짐이 털게장을 담아와 너무 맛나게 드신다. 내가 밥그릇 뚜껑을 들고가 '“동냥 왔시유. 너무 먹고자파 못 참겠시유했더니 두 마리를 준다옆 테이블에서 그걸 얻어드시던 할메가 당신 것도 갖다 내게 주시며 난 이가 시원찮아 못 묵어. 이것마저 잡숴.”라며 주신다. 맛나게 먹는 것도 효도다. 손가락까지 쪽쪽 빨며 씨익 웃어드렸다. 시장판의 여자들은 다 가족이다. 이리 가까운 정을 느끼니 다음 장날이 기다려진다.


드물댁 꼬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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