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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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 일찍 감자 샌드위치를 싸고 과일과 초콜릿, 과자를 챙겨 등산 가방을 쌌다. 산행을 하러 음식을 준비하는 것인지, 음식을 먹으러 산에 가는 것인지, 내 가방은 늘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 보스코가 짐꾼으로 고생이다. 지리산에 살면서 어쩌다 실로 몇 해 만의 등산이 되었다. 더구나 20년 가까운 지리산 귀촌생활에 덕유산 등정이 처음이라니(남덕유산은 갔지만)!


도정 김교수 부부, 체칠리아 부부, 소담정 도메니카, 우리, 그리고 덕유산 케이블카 승강장 입구에서 서상 베로니카가 합류했다. 모두 70대를 넘은 업자들이니 노는 게 일인 셈이다. 하기야 제일 나이 많은 80대로서 아직도 번역을 업으로 삼는 현역 보스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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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로니카씨 가방은 눈으로 보기에도 엄청 무거워 보인다. 최근까지 식당을 했던 그미로서 먹이는 게 업이었으니 이 불쌍한 중생 전부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본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무주 구천동 스키리조트 널따란 계곡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고 거기서 30여분 걸으니 덕유산 정상 향적봉(1614m)이었.


다들 무릎이 시원치 않아 빨리, 멀리 걷기는 애초에 글렀지만 나이에 비해 평상시에 열심히 걸어온 사람들이라 지치지 않고 잘 걷는다. 우리는 중봉까지 갔다. 내가 난데없이 꺾이곤 하는 무릎을 조심하느라, 또 사진 찍는 일로 해찰하느라 제일 뒤처져야 했다. 보스코도 나를 핑계로 느릿느릿 내 뒤를 따라온다, '부(副)대장은 맨 뒤에서 일행을 지킨다'는 핑계도 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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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비가 온 뒤라 미세 먼지 하나 없이 투명하게 맑았고, 향적봉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멀리 지리산과 가까이 남덕유산, 머얼리 가야산과 비계산, 황매산, 대둔산, 계룡산, 가까이 적상산(향로봉), 서대산이 물결처럼 조화롭게 펼쳐진다. 하느님 뵈러 가면 '당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원 없이 잘 살고 왔습니다'고, 그 동네 천사들에게는 '산산산의 나라에서 왔소이다'고 자랑해야겠다.


꽃들은 왜 그리 고운지! 물철죽, 풀솜대, 청나래고사리, 꽃마리, 벌깨덩굴, 애기나리, 비리대, 내가 아는 꽃보다 모르는 꽃이 더 많고, 내가 본 꽃보다 숨어서 핀 꽃들이 더 많았다. 오로지 창조주 눈에만 띄면서도 그토록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서 산벌레들에게 꿀과 꽃가루와 향기를 제공하는 생명들이 참으로 곱고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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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큰딸 이엘리가 자기 딸 혜지와 같이 놀러 오마고 약속한 날. 휴천재 매실은 익다 못해 떨어지기 시작하고 진이네 체리도 농익어만 가는데, 속만 태우다 어여쁜 사람들이 온다니 우리 둘은 새벽부터 들떠 있었다. 엘리가 비 걱정을 하기에 구름이 지리산 하봉에 걸려 함양읍내나 이웃 마천이나 심지어 한남마을에 비가 와도 우리 마을은안 오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는 쳤다


내 말의 주문에 약발이 떨어졌는지 9시 쯤부터 비가 오다가 멈추다 가를 거듭한다. 오전 10시 쯤 엘리 모녀가 도착하고 아침 먹자마자 매실을 털고 있던 보스코는 나와 큰딸, 큰딸네 작은딸 세 여자에게 비닐천을 붙잡게 하고서 텃밭 아래 매실나무를 장대로 마저 털었다.


빗발이 주춤할 때를 틈타 남호리로 체리 보급투쟁을 나갔다. 때마침 비가 멈추고 해님이 슬쩍 우리를 거들었다. 진이네 농장 커다란 체리나무들에서 농익은 건 따서 입에 넣어가며 각자 바구니를 채워갔다. 두 손주의 고 작고 이쁜 주둥이에 넣어줄 욕심에 이엘리 체리 바구니가 제일 빨리 차고, 그 다음이 나, 그 다음이 보스코, 혜지는 음악을 들으며 한 번에 한개씩 따는 한량.


오늘은 노동을 했으니 함바 집으로!’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상추쌈, 시레기국에 시골밥상이 마침 시작한 소나기 소리에 술술 잘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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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심은 우리 체리나무 한 그루에도 첫열매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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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여인들은 매실을 추렸다. 올해는 유난히 벌 나비가 안 보이던 봄이라(이 무슨 불길한 징조냐, ‘?! ?! ?!’하며 침몰해가는 지구호와 그 위의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인류라니!) 매실에 쭉정이도 많고 병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저거라도 모조리 땅에 떨어져 썩지 않고 누군가의 식탁에 오를 음식이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


혜지 모녀가 따 온 체리를 손 보는 동안 나는 월남 삿갓을 쓰고 이슬비를 맞으며 루콜라, 머위, 신선초, 부추, 돌나물 등 푸성귀를 챙긴다. 시장 값으로 치자면 몽땅 해야 돈 만원도 안될 것들이지만 이것을 통해 여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정은 무슨 화폐로도 계산이 안 된다. 네 시가 되어 큰딸네가 부지런히 떠나고 나니 휴천재에는 다시 정적 속에 두 늙은이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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