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5일 목요일. 맑음


수요일 새벽 6, 이장의 마을 방송이 시끄럽다. ', , 마이크 시험 중임다.' 하지가 가까워지며 동남향으로 난 휴천재 창으로 아침햇살이 벌써 중천이다시골사람들은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난다. 이장의 마을 방송도 해 길이에 따라 여름 겨울이 다르다. "공공근로를 원하시는 동민은 주민증과 도장을 갖고 본인이 면에 가서 직접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531일 까집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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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공공근로 신청을 안 해, 금년 '공공근로 노인일자리'를 못하게 되자 아르바이트를 놓친 드물댁의 낙담이 얼마나 컸던가! 드물댁이 득달같이 올라와 내가 면사무소에 같이 가주기를 바라는 눈치8시도 안된 시간, 아침도 먹기 전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미를 차에 싣고 면사무소엘 갔다. 830분도 안 됐으니 면직원들도 출근 전. 840분 출근한 계장이 '65세 미만.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일자리'라고 설명한. "전화로 물어 보고 오던지, 방송내용을 이장에게 확인해 보던지"라는 계장은 일자무식 아줌마를 생각 없이 데려온 내가 더 한심하다는 눈치였다.


막무가내로 '어여 면사무소 가자'고 나를 채근했던 드물댁이 코가 빠져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침을 먹고 휴천재 뒤란 언덕에 낫질을 하는 있으려니 드물댁이 올라와 낫을 잡고 앉는다. 자기 땜에 '교수떼기가 우세사고, 시간 베렸으니' 같이 도와 주겠단다. 그미의 의리 하나는 돈독하다.


어제 점심. 뒷뜰에서 자른 머위를 껍질벗겨 조갯살 다져 넣고, 들기름에 볶다가 부추와 방아잎을 넣고 들깨를 갈아 넣으니, 보약이 따로 없다. 이렇게 만든 머위나물 반찬을 다섯 집으로 나눴다. 봄에 나는 모든 풀이 하느님이 주신 천연의 보약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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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요일 미루가 모시는 '은빛나래단'이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나들이 가는 날. 부지런한 남해 형부 부부는 벌써 다녀왔다 해서 여섯만 갔다. 아침 730분에 미루네에서 만나 가는 차 안에서 커피와 떡으로 아침을 하고 순천에 도착하니 9순천 원주민이 알려준 대로 제5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마 잘 알려지지 않아 차 세우기가 여유롭고 입장이나 매표 등이 가장 편리한 장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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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어르신들은 입장이 무료다. 봉재언니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걷는 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해 정원관람차를 탔다10년 전 왔을 때의 옹색하고 실망스럽던 기분이 싹 없어졌다. 그때는 그늘 하나 없어 쉴 곳이 적었는데, 10년이란 세월 속에 나무들도 큰 그늘로 자리를 잘 잡았고 앉거나 쉬어갈 의자도 많았다.


스카이큐브를 타고 가서 갈대 열차로 갈아타고 순천만 갈대숲’도 보았. 10년 전에는 가을이었고 누런 갈대가 내 키를 넘었는데, 봄이어선지 오늘의 갈대는 짱뚱어와 게들이 노는 것이 들여다보이는 어린 숲이다. 갈대 숲에 이는 바람과 바다 냄새가 걷는 내내 봉재언니의 손을 잡고 다니는 보스코의 모습에 선선함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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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전해주는 말이다. '우리의 젊은 날을 고맙게 기억하고, 오늘의 나약함을 서러워 마라.' '가을은 갈대를 억세로 만들고 봄이면 새 순으로 돌아오느니 영원한 순환의 괘로다.' '이렇게 오늘도 아직 두 발로 걷고 잘 구경하고 잘 놀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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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보훈병원에 입원해서 두상이 서방님에게 전수검진을 받은 세째 동서('꼬끼엄마': 1974년도에 동서 셋이 동시에 아기를 가져 나는 '빵기엄마', 둘째는 '뚱기엄마', 셋째는 '꼬끼엄마'라는 애칭으로 통했다)가 전화를 했다. 한 주간의 검사결과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오늘 받았단다. 아니, 이상은 있는데 폐암세포가 더 이상 진행을 멈춰서 1,2년 후에나 검진을 받으러 오란다나? 


'기침이 너무 괴로운 참에 아들이 사다 준 고흥낙지로 연포탕을 해 먹으니 좋아지고 한 마리 더 먹을 때마다 그만큼 더 좋아지더라.'는 동서의 얘기에  '100마리쯤 먹으면 완치될 것 같네 그려.'라며 내가 낙지값을 좀 보냈는데, 이 동서의 낙지 신앙이 고흥 뻘 사는 낙지들의 수난으로 이어질 듯해서 낙지들한테는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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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이교수네에 들러 '개집 위에 사람집을 짓는다'는 이상한 소문을 확인하였. 널따랗게 담장을 둘러치고 장미들이 화려하게 핀 '개 운동장'이 딸려 있고, 운동장 입구에 이층으로 지어지는 목조건물은 1층 '개집'과 2층 '사람집'(화실)에 제각기 커다란 밀문이 두 짝씩 달려 있다. 개는 창문이 저만큼 커야 하나보다. 개고양이를 정말 사랑하고 보살피는 분들이다.


앞산에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1층에서는 '세계'와 '평화'라고 이름 지은 개 두 마리가 인도 명상을 할 테고(공사도 '오르빌 공동체' 목수들이 맡아 하고 있었다), 2층에서는 여류화가가 천왕봉으로 지는 해를 캠퍼스에 옮길 게다. 왕산 발치의 일대 토지가 양선생(사람들은 그냥 '도사'라고 부른다)의 땅이어선지 그곳 사람들도 도사다운 모습으로들 살아간다.

 

마을 입구 양선생집(그분 토굴이 왕산 중턱에 있어 집은 언제나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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