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6일 화요일. 맑고 더움


월요일 새벽. 새벽을 가르고 달려오는 큰딸이 있어 나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층 테라스를 감고 오른 인동초에 진딧물은 사라졌는데, 아직도 오그라진 잎사귀 안이 수상하다. 더구나 개미가 부지런히 줄지어 오가는 걸 보니 아직도 어디선가 진딧물의 배설물을 배급받으러 가는 모양이다. 어젯밤에 타 놓은 진딧물약을 쳐주고 개미떼의 진로도 차단시킨다.


8시 좀 넘어 이엘리가 잠깐 들렀다. 자기한테 작은 에어 플라이 기계가 있는데, '어쩌다 동생' 신부의 사무실에 있으면 청년들이 찾아왔을 때 잘 쓰이겠다는 '착한 누이'의 마음이 인천에서 서울 우이동까지 달려오게 만들었다. '딸 하나도 못 낳는 여자'라고 구박받던 내게 어쩌다 딸이 넷이나 생겨 두 아들까지 누이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다니! 이 딸들의 특징은 모두 나를 닮아 '잠시도 쉴 새 없이 바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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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가면 셋째딸 미루가 우리 두 노인을 살뜰히 보살핀다. 더구나 이 어지러운 시국에 우리는 시국기도회에 한번 제대로 못 갔는데 미루가 대표로 창원으로, 광주로 사제단의 월요시국미사에 참석하고, 어제도 '광주 5.18 민주묘역' 시국 미사에 갔다가 '성삼의 딸들' 국수녀님도 만났다고 사진을 보내 왔다. 가족의 시국관을 대표한 기특한 딸이다. '굥'이란 자가 무너지면 우리 셋째의 기도가 크리라.


이번 서울집 수리공사의 마지막 관문! 전기 공사를 해주러 어제 월요일에 전기기사가 왔다. 우선 그간 불통이었던 2층 인터폰을 다시 설치하여 대문으로부터 1, 2층으로 개통하게 손써주었다. 그리고 30년 전 설치해서 엉망이던 콘센트를 모조리 새것으로 갈아주고, 창고 등도 새로 설치해 주었다. 평소에는 전문가의 필요를 잊고 살다가 이렇게 손써줄 때야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신세 지는지 알고 고마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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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쯤 빵고 신부가 잠깐 들렀다. 내 생일에 두 아들이 선물해준 핸드폰에 먼저 핸폰의 모든 정보를 이동하여 입력시켜 주었다. 조개 스파게티와 샐러드로 간단히 점심을 하고 작은아들은 부지런히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젠 수도원이 빵고신부의 '집'이다. 이곳 생가(生家: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이곳 본당에서 첫미사를 올렸으니 성하윤 신부의 진짜 '생가')는 언제부터 '본가(本家)'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고, 휴가차 집에 가는 일을 수도자들은 '본가방문(本家訪問)'이라는 더 이상한 말로 부른다. 두 시간 머물다 간 아들의 자리가 어미의 마음에는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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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 늦게 후배 전목사가 우리집 정원에 너무 많은 식물들을 '모시러' 왔다. 너무 많아 천대를 받던 식물도 '없는 곳'에 가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전목사 남편이 부지런히 삽질하여 힘들어 캐갔으니 그 집 가서 부디 잘 살아라. 밤에 캄캄할 때 캐가고 나니 오늘 아침, 캐낸 자리나 어수선해 보인다


새벽에 보스코가 갈퀴로 대강 긁어내고 흙도 적당히 뿌리고 영산홍에 물을 주는데, '적당히'라든가 '나중에'라는 말을 못 견디는 나는 손으로 일일이 떨어진 잎들을 주워내고 흩뿌려진 흙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펴준다. 창문 앞, 사람 눈이 제일 많이 가는 자리, 섬초롱을 캐낸 곳에 패랭이와 달리아를 심었다. 뒷쪽으로는 분홍색 달맞이꽃을, 앞줄에는 그늘에서 고생하던 복수초와 각시패랭이를 옮겨 심었다. 그 일만으로도 오전이 다 갔다. 우이동집 마당이 손바닥만큼 작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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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충무로에서 열리는 '대건회' 모임 점심에 나갔다. '광주가톨릭대학'의 옛 이름이 '대건신학대학'이고 그곳 졸업생들의 모임이란다. 성직자들과 성직의 길을 준비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60년대와 70년대에 '한솥밥 먹은' 우정을 나누는 자린가 보다


보스코도 1973년의 첫 직장이 그곳에서 발간하는 '신학전망(神學展望)' 편집실이어서 1974-76년에는 대건신학대학 대학원 과정을 거쳐 석사 학위를 땄으므로 그곳 동문에 해당한다며 초대 받아 간 자리다. 대부분 80대와 70대 노인들이더란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보스코를 전철역 태릉입구역에서 만나(330) 차에 싣고서 휴천재로 내려왔다. 지리산에 도착하니 830! 이제는 차를 운전하여 서울 가는 일과 서울을 탈출하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그래도 두 집을 오가는 일이 우리에게 큰 생기를 주겠거니 생각하고, 또 두 곳 다 '자연과 얼굴 부비며 사는 게' 행복이라고 스스로 타이르며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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