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1일 목요일. 맑음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독서모임에서 읽고 토론하는 날이다. 평소에 아우들에게 빠지지 말라고 했는데 이번 목요일에는 나마저 빠지고 보니 미안하다. 내 독후감을 딴 사람이 낭독해주기로 해서 마음이 놓였다. 미국의 어류분류학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데이비드 조던은 별을 너무 좋아하여 자기 이름에 스타를 넣을 정도로 귀여운 소년이었다. 그러나 첫 부인이 죽자  여보아라는 듯이 더 어리고 똑똑한 아내를얻고 나서 전실부인의 두 아이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기숙학교로 보낸다. ‘이 사람 뭐지?’ 자기가 목숨 걸고 채집한 물고기 표본을 지진으로 다 잃고도 털고 일어나는 쇠심줄의 남자라면 뭔가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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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매발톱꽃'들이 송이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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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드디어 그가 우생학에 몰두하며 자기가 잡고 해부하던 물고기 분류하듯 우생학 이데올로기에 빠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인간 집단을 제거 말살하는데 앞장섬으로써 그가 어떤 악당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도 당신과 같은 인간이요'라는 외침을 못 받아들일 때 본인들은 학자라며 스스로는 잘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가 먼저 존재할 가치가 없는 범죄자로 돌변한다


우생학 주창자가 되어 '가치없다'고 단정된 인간을 모조리 집단 수용하고 불임수술을 시켜버린 반인류 범죄자 정치가가 되고 만다. 우수 민족 게르만인들의 세계 지배를 주창하며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범죄와 다를 바 없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을 때 모든 학문과 이념이 범죄로 귀결된다. 보스코는 특히 종교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온 인도주의 범죄를 늘상 한탄해 왔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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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 '민들레의 법칙'이다. 분기학(分岐學)을 한다는 자들이 등장하면서 어류(魚類)란 우리의 망상이었고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문적 결론이 나온다. 기나긴 역사 속에 물속에 떨어진 생명들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무슨 변화를 했을까? 코끼리도, 개미도, 뱀도, 사람도? 이게 다 물에 산다고 물고기는 아니다. 폐어(肺魚)를 보면 물속에 살지만 엄연히 포유류임이 확인된다.


별들을 포기했을 때 우리는 우주를 얻는다.”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진실을 얻는다.” 물고기는 우리의 사촌들이다. 이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텐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자랑스럽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었던 건물에서 그의 이름을 떼어낸다. 학문적으로 그 이름이 부끄러웠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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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갈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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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에는 자손들이 다녀갔으니 어제야 드물댁과 어버이날 점심을 같이했다. 혼자서 해먹는 찬이 변변치 않다 보니 그미는 어쩌다 외식이라도 하면 모든 음식을 말끔히 먹어 치운다. 우리 동네에서도 그렇지만, 나이 들어 자식들이 모셔간다 해도, 먹는 게 변변치 않더라도, 아짐들은 자유로운 삶을 택한다


영감 죽고 자식들 다 대처로 나가 살더라도 외롭고 힘들더라도 시골에서 혼자 사는 자유를 선택한다. 마지막에는 자식들이 모셔가는데, 그게 병원이거나 요양원이라는 걸 다들 알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의 심정이 된다. 드물댁도 걷는 게 많이 굼떠지고 듣는 것도 어눌하여 지켜보는 내 마음이 아프다. 제발 오랫동안 곁에 남아서 함께 지낼 수 있기를.


아짐 하나가 오랜만에 서울서 내려왔었다. 많이 수척해 보였다. 본인은 이제 다 나았다지만  말기암을 6년간 견뎌낸 세월이 대단할 뿐이다. 재발되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병세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웃도 본인도 남은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다 안다. 남들은 다들 일궈 놓은 밭고랑이 부러워 그 아짐은  드물댁을 시켜 골도 치고 멀칭도 했지만 심겠다던 땅콩도 들깨도 못 심고, 서울로 돌아가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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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으로 뭔가 땅에 심어 자식들 입에 이바지하고  '고것들 만나게 먹는 것 바라보고 자푼' 마음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이랑 위에 덩그라니 심어져 지줏대도 없이 건들거리는 그미 밭의 고추모들이 마냥 외롭고 서럽다. 죽으면 다 끝나는 일이지만 자식들 마음엔 엄마의 추억이 그해 그 고추모가 심겨진 추억으로 남으리라. 엄마가 먼 길, 마지막 길을 떠나시기 전 손수 심던 고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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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오려니 지난 며칠 옮겨 심은 연산홍에 물을 잔뜩 줬다, 엊그제 비가 왔지만. 그러나 물을 주다 보면 문득 땅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주욱 그리로 새버린다. 두더지 굴들이다. 그제는 팔랑개비를 농협 자재상에서 다섯 개나 사다 우선 마당 화단에 세웠다. 팔랑개비가 돌며 내는 소란한 소리에 두더지영감이 짐 싸서 떠나주기를 바라는데 2만원씩이나 주고 산 게 별로 신통치 않다. 두더지가 층간소음에 익숙한 반귀머거리 영감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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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집 으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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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7시에 휴천재를 떠나 모처럼 밀리지 않고 다섯 시간만에 서울집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연산홍을 마당에 부리고, 점심을 먹고나서 심기 시작 한 게 저녁이 돼서야 끝났다. 천년만년 살겠다고 아직도 꽃을 날라다 심고 있으니 우습다.


지난번 미처 정리하지 못한, 호천네 집에서 얻어온 새 냉장고 정리, 새 식탁 정리를 하고 나니 집안이 한결 품위가 있어보인다. 큰딸이 잠시 들러 새로 고친 집을 둘러보고 갔다. 밤에는 한목사 집에 지리산에서 가져간 푸성귀를 전하고 그미가 "나 이젠 손님 대접 않는다."며 내놓은 접시들을 선물 받아다 우리집 식탁에 싸놓으니 그 또한 우습다


'그래, 내일 내 생이 끝나더라도 난 오늘 꽃나무를 심으련다!' 임실댁 고추모 심고 떠나듯 일상을 가꾸고, 꽃을 심어 지인들 데려다 꽃놀이하고, 예쁜 그릇에 맛난 것 많이 해서 나눠 먹으리라. 하늘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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