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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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전날 내린 비로 휴천재 앞산은 물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가끔 힐끗힐끗 보이는 잡목 숲에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꼬리 잇기를 하듯 산자락이 숨었다 보였다 재미지게놀고 있다. 김원장 부부가 우리의 노년을 위해 두 분과 더 가까운 남원으로 이사와 아파트 생활로 옮기라 권하지만 저 모든 것을, 지리산 저 풍광을 어떻게 기억에 접고 떠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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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남해 형부가 남해로 우리 '은빛나래단'을 초대했다. 전날 내린 비로 깨끗이 씻긴 하늘과 바다가 똑같이 투명한 파란색이다. 형부가 이 푸른빛 자연 속에 푹 잠겨 정신 못 차리게 행복한이유를 나는 충분히 안다. 나도 산에서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점심은 (순둥이네가 전문인) 아구찜을 먹었다. 요즘 망가진 발로 장사를 못해 동동거리는 셋째딸이 눈에 선하다. 어서 나아서 가게를 종횡무진 날아다닐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미루네와 돌아오는 길, 미루네 산청읍 언덕에 새로 복원한 커다란 정자에 올라 갔다. 지금이야 강바람이 싸늘하지만 여름에는 산청의 명물이 되겠다. 옛날 조상들은 정말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이었다. 사방으로 툭 터져 지리산과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곳, 여름에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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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있는데 드물댁이 헐레벌떡 올라왔다. 월요일부터 공공근로를 시작하는데, 작년 12월에, 새해에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연장신청을 하라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 신청 기회를 놓쳤나 보다. 글자를 못 읽는다는 게 얼마나 큰 손해요 상실인지! 풀이 죽어 올 일년을 어찌 보낼까?’하는 걱정에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다 잘 될 끼구만. 월요일 아침 일찍 나랑 면사무소에 가서 사정을 해보면 길이 보일 꺼요.’ 라고 다독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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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만난 남해 형부의 큰딸 김은하 작가가 세계인권선언을 예쁜 그림이 그려진 존엄을 외쳐요』(사계절) 라는 책으로 보내주었다. 세계인권선언 헌장을 간추린 교본이다. 거기 6쪽에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져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소중하게 여기고 연대해야 해요라고 나와 있다. 내가 약자인 드물댁을 도와줘야 하는 이유다.


어제 토요일. 우리 친구 이태석 신부님(1997~1998 보스코의 로마 안식년에 그는 로마에서 마지막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13주기를 추모하러 담양천주교 묘역엘 갔다. '친구 따라 강남길'(‘내가 데꼬 들어온 딸순둥이가 서울에서 담양 온 데서 만나보러 가는 길이니 '딸 따라 강남길'이다)에 도정 체칠리아도 이태석 신부님 추모에 가겠다기에 함께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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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노소 모든 중생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그 동네에 들어서면 나 역시 마음이 아주 편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어깨를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승 얘기를 나누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 온다는 동지 의식이려니... 언제 봐도 반가운 우리 딸 순둥이는 아픈 다리로도 씩씩하게 참석하여 나를 반긴다.


미사 중에 박신부님은 예수님 제자 중에도 어부가 있는가 하면, 세리도 있고, 서로 다른 직업에다 개성들도 강해서 틀림없이 서로 부딪혔을 꺼라고,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마음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했을 꺼라고, 여러분도 서도 다르겠지만 한마음으로 이태석 신부님이 꿈꾸던 세상을 살아가라고 부탁했다. 우리 순둥이가 한때 이태석 신부님을 기리는 수단장학회이사장을 지내면서 그 사업이 살레시안 이태석을 기리는 사업으로 궤도를 바로잡는데 일조한 수고를 상기시키는 강론이었다.


미사 후 점심 식사를 하자마자 일행을 서울서 싣고 온 버스로 순둥이를 보내고 나니 꿈에서 언뜻 본 듯 허전했다. 미리내 양로원 유무상통에서 만 20년을 보내신 울 엄마가 내가 찾아갈 적마다(우리 형제가 다섯이어서 한 주일에 한 명씩, 그러니까 각자가 한 달에 한 번 씩 엄마 방문이 배당되었었다) 헤어지는 마당에서 늘 "얘야, 꿈에서 언뜻 보다 만듯하다"고 섭섭해 하시던 그 심경 새삼 알겠다. 돌아오는 길에 담양 사는 성삼의 딸 수도회수녀님들을 잠깐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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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40

오늘은 연중 제2주일본당신부님이 평소 저녁 7시 공소미사에 오시는데 오늘은 다섯시 반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고, 미사 후에 마천 '강쇠네'에서 공소식구 전부가 회식을 했다. 코로나로 몇 해 만에 갖는 모임이었다


여교우들이 일을 안 해도 되니 편하긴 했지만 식당에서의 회식은 좀 무성의한 모임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생각은 나만 갖는 듯해서 '아직도 나는 구시대의 유물인가 보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