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8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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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한신대 1년 후배 오성애가 하느님 나라로 돌아갔다. 내가 다닐 적에 우리 학교 한국신학대학 여학생 수가 모두 해야 30명이 될까 말까 하는 수라서, 더구나 1년 앞뒤 선후배들은 마치 친자매들 같이 살갑고 가까웠다.


숫자가 적고 목회생활을 하며 남편의 고초를 제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같은 학교 사람들끼리라 남학생이나 선생님들은 교내 커플이 탄생하면 좋아하고 축복해 주었다. 성애는 워낙 착하고 말수가 없어 많은 남학생들이 눈독을 들였는데, 그중 능력 있고 재치있고 동작 빠른 3년 선배 박승화 목사의 아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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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여자와는 달리, FM으로 목사 사모의 자리를 소리 없이 잘 해나갔다. 그러나 송암교회에서 18년을 온몸을 불태우며 밤낮없이 교회 일에 내놓았던 박승화 목사님의 삶은 20094362세의 나이로 하느님 나라로 적을 옮기게 된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2223


57세에 홀로 된 성애는 한국에서 홀로 된 여인(未亡人: 아직 안 죽은 여자)이 겪을 수 있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바람에 훅 쓰러질 것 같은 코스모스 이미지여서 선후배들이 보기에도 안타까웠지만, 누구에게도 누가 안 되게 잘도 버티며 살아왔다, 아파서 눕기 전까지는


그토록 그리던 남편 곁으로 떠났으니 축하해 줄 일인데 왜 마음은 이렇게 아프고 눈물이 나는지! 그동안 이승에서의 정이 너무 깊었나 보다. 어제 토요일 입관 예배를 보고 내일 19() 천국환송예배로 그미를 떠나보내야 한다. "하느님 곁에서 별처럼 빛날 너를 기린다. 성애야, 잘 가거라! 머잖아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성애 남편 박목사님의 상가에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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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보스코는 수면 검사(청량리 성바오로병원에서 심한 무호흡증을 진단받고서 밤이면 양압기를 쓴지 4년 되었다)를 받으러 서울 보훈병원으로 떠나고, 보호자는 검사실에 들여보낼 수 없으니 오지 말라는 병원측 통보를 받고서 나는 서울행을 포기하고, ‘내 칭고리따를 찾아보러 목포에 갔다. 그녀를 본지가 거의 3년이 되어간다. 칭고는 굴떡국을 끓여 주었다. 로마 유학시절(1981)부터 사귀었으니 무엇을 먹어도 맛이 있고 무엇을 같이 해도 재미있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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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일을 본당주임신부 수준으로 열심히 한다고 소문났고, 성가대 알토 파트는 꽉 잡고 있다. 주 중에는 우쿨렐레 연주를 하며 솔로로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 장구, 양반춤까지 안 하는 게 없다


혼자 살아서 우울증이라도 걸릴까 걱정했더니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자기 혼자서 이탈리아식으로 전식, 첫 접시, 두번째 접시, 후식까지 다 차려 먹었단다. 포도주가 없어서 포도주 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나? "그래도 기분을 내니 억울한 건 없었다"는 말에 좋은 포도주 한 병을 갖다 주었다. 내 자신에게 충실하고 행복을 찾아 어디까지나 날아오르는 내 칭고가 나는 좋다.


먼 옛날 내 칭고 리따와 함께 알프스에서(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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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까지 로마에서 6년을 함께 지내던 옛이야기로 도란도란하다 보니 12시가 넘었다. 쌔액쌔액 친구의 숨소리에 내게도 꿈나라가 사뿐히 날아와 곁에 앉는다. 40년을 사귄 친구니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을 안다.


토요일 아침. ‘지리산 산골 촌년 장꾸경 시켜준다고 목포 동부시장엘 데려갔다. 따뜻한 털토시 두 개와 드물댁 털버선 두 켤레를 샀다. 생선가게에서 굴, 조기, 병어, 오징어, 낙지도 사고 보리국(전라도 남자나 맛을 알 게다)을 끓이려 보리싹도 사고, 도라지도 샀더니 벌써 밥상 가득 한 상 차린 기분이다. 포도주와 치즈를 사러 큰 마트에도 가고 눈이 뱅뱅 돌도록 구경을 하고 이것저것 샀는데 정말 몇 푼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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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사고 싶은 게 줄어든다. 단 돈 만원 짜리 백반집에서 육해공군이 다 올라온 푸진 밥상을 받았는데 전라도 목포에서나 가능한 상이다. 친구는 어딜 가도 '여긴 우리 동넨 게 내가 식히는 대로 혀!'라며 손지갑을 연다.


친구 시키는 대로 놀다 5시에 휴천재에 돌아오니 혼자 병원 갔다 혼자 돌아온 보스코가 하루 만에 본 내 얼굴을 어지간히 반긴다. 이리 좋으니 한 사람과 50년을 살겠지, 질리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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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엔 새벽에 주의 공현대축일공소예절을 하고, 낮엔 표정숙 후배와 함양 읍내에 있는 '참 좋은 우리 교회'엘 갔다. 그미의 거창고등학교 후배가 시무하는 교회였다. 선후배들이 끈끈하게 거창고 출신 목사님을 돕는다. 교회의 활발한 예배가 그 학교의 사람들 됨됨이를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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