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3일 화요일. 맑음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실내온도가 19도 정도다. 심야전기 온수보일러 물은 85도로 덥혀졌다. 7시까지 두 시간 가량 보일러를 켜면 실내온도는 21, 물온도는 82도로 떨어진다. 난방을 끄고 85도로 온수가 다시 올라가면 하루 종일 자연순환이 되면서 저녁 6시에도 82도가 되어 있다. 저녁엔 다시 난방조절기를 들여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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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난방보일러 기름탱크에 기름 사 넣고, 겨울이면 심야전기 온수보일러를 수시로 들여보면서 온도를 조절하고, 서재와 마루에 걸린 난방 조절기와 그토록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내가 없는 날에는 누구도 온도계나 난방 스위치를 쳐다보지도 않고, 온도가 내려가도 ‘집안이 왜 추운가?’ 묻지도 않는다


우리 남자에게 당신은 온도 조절기 한번 들여다보는 일 없고, 보일러실 한번 열어 보는 일 없이 인생 참 편하게 사네요.” 했더니만, “맞아 내 인생 참 편해.우렁이각시가 다 해”라는 천연덕스러운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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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담정 도메니카가 올라와 점심을 함께 들었다. 연말을 동생들네와 함께 보낸 이야기 보따리에서 그미 가족사의 여러 자락이 펄럭펄럭 드러난다. 처녀 가장으로 아프신 부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고, 남겨진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까지 보내야 했다


이젠 제각기 결혼해서 부모가 됐는데도, 누나의 눈에는, 아직도 형제마다 미비한 구석을 채워줘야 하는 책임을 느끼나 보다. 결혼도 않고 부모로서의 사명감과 걱정 거리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한 여인의 팔자랄까? 엄마로서 누나로서 생명들을 가꾸는데 한 평생을 오롯이 바치는 주변 여인들의 삶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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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찬바람이 심하다. 먼 산을 올려다보니 눈보라가 마구 날리는지 시야가 뿌옇다내 친구 한목사가 어제 제주엘 갔는데, 남편에게 갔으니 당연히 잘 갔다고 해야 하는데, 해외에 갔다니 갑자기 보고 싶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한라산에서 눈을 사진에 가득 담아 보냈다.


한라산 설경을 들여다보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오늘은 내가 왜 종일 우울할까?’ 더듬어 보니 2000년대에 내 기억에서 갑자기 사라진 어느 사제가 기억나서였다. 바오로회 유신부님. 순박하고 재미있는 분이어서 가까이 지냈고 언제 만나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미아리 수도원에서도 로마에서도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어째서 눈에 안 보일까 묻지도 못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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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제 이베르나르도 수사님 금경축 기념 책자 뒤돌아보지 마라를 읽다 그 신부님이 2004116일에 돌아가셔셔 이수사님이 쓴 고별사가 나왔다. 오늘 이봉하 수사님께 전화로 다시 물었더니 간염보균자로 어렵게 지내다 간암이 갑자기 발병하여 쉬이 돌아가셨단다. 50년대에 한국에 진출한 이 수도회 수사님들이 무척이나 기다렸던 바오로회 첫번째 방인사제였는데... 


우리가 바티칸에 가 있던 시기여서 유신부님 부고도 장례식도 놓치고 말았나 보다. 우리가 가까이 지내다가도 소식을 놓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눈앞에서 사라지면 마음에서도 얼마나 빨리 잊혀지는가


보스코와 산보길에서 바치는 로사리오에서 늘 죽은 이들을 기억하여 한 단 쯤 돌리는데 성모송 한 번으로, 한 송이 기억이라도 고인들을 떠올리는 습관은 그들 영혼의 손길이 내 마음을 감싸주는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늦가을 11월과 산천이 조용한 겨울은 죽은 이를 사랑하는 계절로 그렇게 조용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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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숙씨네 운림원에 찾아갔다. 오래 못 봐서 궁금했고, 남편 이선생의 건강도 염려되었는데, 이선생이 건강한 모습이어서 안심이 됐다. 몇 해 전 위가 아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함양읍에서는 제일 큰 병원에 갔는데, 아무 조치도 않고 침대에 눕혀둔 채 20여일 허연 물약 링거만 주더란다


식사를 못해 70Kg 나가던 몸무게가 45Kg이 되도록 방치하더니만 아산병원으로 가서 수술해야겠다니까 그제서야 진주경상대 병원으로 보낼 생각이었다는 변명이더란다. 아무튼 서울 가서 수술한 덕분에, 말기 위암으로 두 달밖에 못 산다던 사람이 7년째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만큼 살았으면 됐다싶어 이제는 정기적인 병원 출입도, 여러 해 먹던 약도 다 끊고 지낸단다. 밥도 '머슴밥 마냥' 고봉으로 먹고, 잠도 잘 자고, 잘 살고 있다며 되레 보스코를 걱정해준다.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간호하고 보살펴 살려낸 아내 영숙씨의 자랑스러운 사랑이 "운림원"에 가득하다. 


보스코는 9월초의 수술 후 밥도 잘 먹고, 몸무게도 입원 이전 상태로 회복되었다. 다만 밤잠을 제대로 못 자는 듯해서 애가 탄다. 초저녁이든 늦든 한 잠 자고 나면 (나라 걱정에) 잠을 깨고 번쩍 정신이 든다면서 서재로 가서 책상에 앉는다


멋대로 설치는 저 자에게 투표한 이들이 자기 손가락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 한다지만, 우국지사의 깊은 속병은 뭘로 치유받을지... 지인들과 나누는 새해 인사에서도 깊은 한숨에 땅이 꺼진다. 


심장 스턴트에 폐수술까지 받고 나자 보스코는 새해 들어 휴천재의 장래, 자기가 출판해온 서적들의 후속 처리, 자기 홈피(donbosco.pe.kr) 관리나 내 일기의 추후 관리를 하나씩 다듬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나 보다. 본인 말마따나 "인생 막차 예매한 나이"에 주변을 정리하는 일이야 늘 종말론적 긴장 속에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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