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8일 화요일. 맑음


보스코는 키가 작다. 그러다보니 발도 작아 남성구두점에서는 사서 신을 신이 없다. 요즘은 청소년 용품점에서도 애들이 키도 크고 발도 커서 구매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렇다고 시간을 내서 신을 맞춰 신으려는 성의도 없다. 나야 그의 심정을 알지만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당신 구두를 보고 가슴 아파 하면 어쩌냐?” 하니 남의 신발에 그렇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라.”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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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나도 잘 나갈 때 샀던 그 많은 굽 있는 비싼 구두는 무릎도 아프고 발도 아파 다 처분하고 지하철에서 산 만 원짜리 통굽 구두만 줄곧 신으니 그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하는 수 없이 그의 내자구두를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내고 내자가 까진 데는 검은 매직으로 색칠하고 굽에는 구두약을 먹이는 정성을 들였다.


지난번 강남에 친구 딸 결혼식에 지하철을 타고 가며 모양을 좀 냈다가 23일로 몸살이 나서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전에 엄마 계시던 실버타운에 들어온 강남 멋쟁이 아줌마가, 처음 몇 해는 우아한 옷에 화장 곱게 하고 패물까지 줄줄이 장식하는 정성을 보이다가, 나중에는 잠옷에 머리도 안 빗고 성당 미사나 아침식사에 나오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그거야 치매기와 정비례해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멀쩡한 정신으로도 이젠 멋쟁이 노릇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래도 안 입던 옷을 꺼내 몸에 대보고 색깔을 맞추는 정성이라도 보이는 건 아직 내가 제정신이라는 표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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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울집 인터넷은 2007년부터 큐릭스로 시작해서 ‘T-브로드로 바뀌고 거의 15년을 써왔는데 걸핏하면 인터넷이 나가고 그때마다 파견온 기사는 선을 고친다는 시늉만 해서 자주 끊기고 성능도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회사마저 ‘SKT-브로드로 바뀌어 SKT그룹에 편입되었단다. 어제 기사가 와서 광케이블로 수신박스도 바꿔 주고 갔다


같은 값에 성능도 빨라지고 서비스도 좋아지긴 했지만 작은 기업들이 차츰 공룡기업에 먹히는 꼴은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삼성 엘지 SK 등이 판을 치는 걸 보며, 일전에 카카오가 그렇게나 덩치를 키워오다 하찮은 화재 한번으로 며칠이나 먹통이 되는 걸 보면 공룡이 너무 커져서 멸종했던 일이 기억난다. 작은 것이 좋고, 작은 것이 아름답고, 작은 것이 소중함을 잊어가면서 인류 역시 멸종을 앞둔 느낌이 든다.


우이천변에 걸린 어느 초등학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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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살레시오 중학교 다니던 1950년대에 살레시오 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전남대학교 의대에 다니시던 김요한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분 모친이 막내(나와 동갑) 나이 여덟 살에 돌아가시는 비극을 치르면서 그분은 낮엔 의대를 다니며 밤이면 학교 수위노릇을 하며 지내셨단다.


마음이 한참 어지신 마신부님(보스코에게도 어버이 같은 은인)이 의대 등록금을 대주시어 의사를 만드셨다. 그 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박사가 되었고 미국에 가서 의사 생활을 해오셨다. 나이 아흔이 가까워지며 감사드리고 찾아볼 곳이 많아 여동생 로사씨와 일시 귀국하셨는데 당신들 젊었을 적에 살레시안들이 베풀어준 은혜를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우리가 로마에서 유학하던 80년대에 로마를 방문하여 잠시 만나기도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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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로사씨는 엄마가 돌아가시자 마신부님 도움으로 살레시오 여중고 기숙사에서 수녀님의 사랑 속에 그늘 없이 컸다고 자랑한다. 우리 찬성이 서방님의 어린시절 그대로였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4

6.25 직후 불우한 시절에 구걸을 하거나 고아원 신세를 질 아이들을 거두어 교육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서게 해준 은혜를 입은 보스코의 4형제처럼 그 오누이도 살레시안들의 은혜를 입은데 평생 감사드리는 마음이어서 이번 방문 길에 남녀 살레시오 학교를 방문하여 고마움을 표하고 담양 교회 묘지에 누워계시는 살레시안들을 성묘하고 올라온 길이었다. 어디서든 남에게 입은 은혜에 고마움을 평생 간직하며 사는 분들을 만나는 일은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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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에 묵는 그 오누이와 점심을 먹고 보스코는 가톨릭출판사에 들려서 귀가했고 나는 친구 국민은행 안팀장을 만나 일을 보고서 들어왔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느라 8000보 넘게 걸었더니 나도 보스코도 지쳤다. '살려고 걷는다'는 리본을 둘레길 나무에 걸어가며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를 보는 심정으로 걷던 사람처럼 요즘 우리 부부도 필사적으로 걷는 중이다. 보스코는 잘려나간 폐를 키우기 위해, 나는 아픈 무릎을 회복시키겠다고...


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고통의 신비 2) 

"이 겨레가 큰 내상을 입었구나"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77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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