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3일 목요일. 맑음


어제 아침 일찍 진주 헬레나씨가 전화를 했다. 울려오는 목소리가 눈물을 짜낼 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남편 이안드레아(승규) 교수님이 전날 아침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부고였다


석 달 전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은 후 돌연한 피부병으로 고생하시다 얼마 전 코로나에 걸리며 사단이 났단다. 병원에 입원하며 온갖 검사를 다하다 폐렴으로, 급성백혈병으로 악화하더니 종국에는 그제 새벽에, 며칠을 뜬눈으로 간호하다 지쳐 잠시 곁에서 자기가 새벽잠에 떨어져 있는 새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단다. 숱한 검사로 괴로워하고 탈진해 있었는데 돌아가신 얼굴은 오히려 평안하시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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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이승규 교수님 부부와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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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은 성무일도로 아침기도를 바치던 중이었는데 기도서를 갖다가 그분을 위해 연도를 바쳤다. 산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도 외에는 없어 안타깝다. 우리와는 환경운동으로, 지리산 지키기 활동으로 맺어진 인연이 십 년을 훨씬 넘는다. 훤칠한 키에 사회정의와 환경보호에 열성을 기울이던 경상대 교수님의 상냥한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 3월 내가 코로나 후유증으로 유방 초음파를 찍으러 진주에 갔을 적에 병원을 소개해주고 부부가 함께 맞아 점심을 대접해 주었고 댁에까지 가서 다과를 들다 온 기억이 생생하여 거실 문밖이 죽음으로 가는 계단에 연결된 느낌에 젖었다.


오늘 목요일 아침 9시에 칠암동 성당 장례미사에 가서 기도로 보내드렸다. 가톨릭교회의 엄숙한 영결미사 분위기 외에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교수님이 가입해 활동해온 '재속프란체스코회' 회원들이 모두 미사에 참석하고 이안드레아 교수님이 가시는 길에 꽃으로 관을 장식해 보내드리는 광경이었다. '더는 신체의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꽃길만 걸으십시오.' 빌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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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환희의 신비 5)

"나자렛사람의 꿈"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75193

... 놀이터에서 어린아이가 모래 장난을 한참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즈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손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고 기쁘게 달려가는 모습처럼,

제가 이 세상 삶을 떠나야 할 때

이런 모습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작가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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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실시하는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다. 마을 방송을 듣고 노인들이 엄천보건소로 가서 주사 맞은 어깨를 누르며 주름진 얼굴을 찌푸린다. 보스코는 돌아와서는 몸살하듯 깊은 잠에 떨어졌는데, 나는 오늘 일꾼이 있어 점심 하느라 아플 겨를이 없었다


윗동네 잉구와 영수 씨가 우리 식당채 옆에 세우는 차고를 만드느라 바닥에 시멘트를 깔고 쇠기둥을 세운 위로 철골을 세우며 불꽃을 튀겨 용접을 했다. 시골 살려면 모든 일을 스스로 다해야 신세가 편한데, 나처럼 이웃을 잘 두는 것도 큰 복이다. 오늘 '소담정' 텃밭에 들깨를 베는 도메니카도 함께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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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산보 길에 '이엄마'를 만났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집에서 달려나와 보스코의 손을 잡고 눈물바람이다. 남편 '이아빠'의 병상수발로 오래오래 고생한 여인이다. 폐암으로 1년도 못 산다던 자기 남편도 벌써 57개월을 살고 완치판정을 받았다면서 "교수님, 꺽정마이소. 꼭 낫는다구요.' 라며 보스코를 격려한다. 자기 남편이 병상에 누웠을 적에 "여보, 우리 둘이 손 꼭 잡고 한날 한시에 세상 베립시다."고 했더니 "내가 뭔 복을 그리 지었다고 그런 큰 복을 받겠어."라고 화답하더라는 얘기를 들려주는데 '부디 둘이 함께 죽겠다'고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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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주 장례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루네에 들러 김밥에 라면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어디서나 무엇을 먹어도 반가운 사람들이다.


저녁에는 읍내에서 '느티나무독서회' 모임이 있었다. 정우철 작가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을 읽고 와서 얘기를 나누었다. 보통 그림을 보면 커다란 감회가 오래 남지 않으나 화가의 생애를 읽고 그의 삶의 애환과 동행하며 그림을 보노라면 화가의 작품에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저자가 좋아하는 11명 화가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특별한 재미와 감격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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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좋아한다는 말이 있지만, 고통으로 그려낸 의지의 얼굴 프리다 칼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케터 콜비츠, 정말 이상한 색채를 쓰며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본 비운의 천재 나르시시스트 에곤 실레는 작가의 설명 없이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화가들이었다. 삶이 그렇지만 특히 예술은 '죽음에 이르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만 승화되고 성숙한 열매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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