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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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고 이틀째 집에서 북한산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며 지내는 중이다. 그런데 코로나 2차 감염!’ ‘6%밖에 안 나온다는 재감염에 전순란이 걸렸다! 그 경위는 이렇다.


5인 병실의 깊고 조용한 밤이면 출입구 옆 침대 할머니가 잔기침을 하더니 목이 간질거리고 춥고 머리가 아프다 했다. 월요일 그 할머니 내외가 퇴원하고 나서 내게도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나는 지난 3월 이미 한번 코로나가 걸렸던 터라 아니겠지하면서도 우리 병실 폐질환자에게는 코로나가 치명적이기 땜에 지하 편의점에 내려가서 자가진단키트를 사 들고 올라와 검사를 했다. 음성! 그러나 간호사는 자가진단키트는 정확하지 않으니까 당장 구내 PCR 검사를 다시 하고 오세요.”란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 8시 결과가 핸폰에 떴다. “전순란님, 코로나 양성입니다. 5~11일까지 격리하십시오.” 아뿔사! 주치의에게 연락하니 본래 우리를 수요일 퇴원시킬 예정이었는데 당일 퇴원하란다. 퇴원을 준비하느라 보스코의 심전도도 엑스레이도 기계과 사람이 올라와서 입원실에서, 보스코의 PCR 검사도 담당직원이 방으로 올라와서 했다. 보스코 PCR검사 결과는 오후 5시에 나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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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걱정들 안 하고 가방을 쌌다. 빵고신부가 우리가 퇴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엄마는 격리하시고요 아빠는 차라리 수도원에서 병간하시라는 말씀들이네요.”라고 연락해왔지만 만에 하나 수도원에 코로나를 퍼뜨릴 수도, 보스코를 떠맡길 수도 없어 우리가 사양했다. 그냥 새 차를 병원 지하차고에 주차하고 열쇠를 경비실에 맡기고 수도원으로 돌아가게 했다.


집으로 돌아 와서는 그가 음성이면 다행이고 양성이면 지난번 했던 첫번째 감염에서의 격리가 경험이 되어 더 잘할 수 있으리라. 지리산 휴천재에서도 보스코는 서재에서, 나는 리빙룸에서 지내며 한 주간 격리했으니까(311~17). 그제 오후 5시 문자가 왔다. “성염님, 음성'입니다.” ‘하느님 감사 합니다. 모두 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밥그릇을 함께 먹고 있었는데 나만 두 번 걸리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은 보스코의 저 엄청난 면역력이 지난 30여년간 아내가 달여 먹인 홍삼 덕분이라고들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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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모든 음식이 너무 단맛이 느껴지고(남들은 다 써서 못 먹겠다는데) 역겹다며 못 넘기는 보스코에게는 본인이 싫다는 것은 잠시 접고 좋아하는 맛에 좋아하는 음식으로 대체하라는 김원장님 조언이 나왔다. 과연 아침에는 야쿠르트, 점심에는 낚지 죽, 저녁은 누룽지로 식단을 바꾸니 의의로 보스코가 수저를 든다. 그는 이층 서재와 침실을 널널하게 혼자 차지하고 나는 아래층과 빵괴방’ 1인 침대를 차지하고 서 격리중이다. 


보스코 퇴원 소식을 듣고 호천이는 밤늦게 산낙지를 사다 자기 손으로 열심히 다져 죽염만 넣어서 죽을 쑤었다면서 우이동까지 싣고 와서 죽 그릇을 내민다. 채소와 과일도 한 짐이 들고왔다. 우리 네 딸과 한목사와 천주엄마가 약품과 일용할 양식을 대주니 우정의 애틋함으로 가슴이 따뜻하다. 스텔라는 두유를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아예 기계를 보내 주었다. 주변이 고마운 사람으로 가득하다


보스코의 수술이 더욱 소문나서 송신부님, 함신부님의 문안전화를 받고 그를 가뜩이나 아껴주시는 최대주교님의 전화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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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요일 아침기도에서 읽은 성경소구가 지금 꼭 필요한 욥기(121)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께서 주셨던 것, 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요?”


암수술을 받으면 보통 수술 성공을 얘기하며 심지어 ‘의사의 완치 선언까지 축하하다 암 재발또는 전이가 거론되고 재수술이니 항암치료가 이어지다 결국 목숨을 내놓게 된다. 저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스코와 내가 함께 걸어온 지난 반백년을 돌아보면 정말 많고 많은 좋은 일이 있었음을 새삼 되뇌고, 우리 인생이 제일 어둡다 느껴질 때 거기 나보다 먼저 와서 함께 계시는 분의 현존을 느끼면서 욥과 같은 기도를 올릴 수 있으려니 싶다.


오늘이 보스코의 수술 일주일 되는 날! 이층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간간이 테라스에 나가 걷곤 한다. 가을 하늘은 얼마나 푸르고 높으며 햇살은 얼마나 따뜻한가! 해쓱한 얼굴로 나를 보고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의 나이 80을 넘겨서도 이승에서 함께 지내며 함께 살아갈 날들이 아직도 남아있음에 감사드린다무릇 연은 바람을 등지고 나른다. 그리고 푸른 하늘로 무한정 풀리는 듯하던 우리 연줄도 얼레에 되감길 때면 그만큼 찬찬히 그만큼 단단히 연줄은 당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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