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28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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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보면 인생 참 고달프게 산다고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밖이 환해져 사물이 보이면 옷을 챙겨 입고 머리를 빗고 나면 제일 먼저 텃밭에 내려간다. 저 밭에 빈 공간과 시간이 생길 때마다 뭔가 씨앗을 뿌려 두었더니 사방에서 정체불명의 생명들이 솟아 오른다. 아이가 갓난아이였을 적엔 애들 모습이 거의 비슷비슷하다


아무튼 우리 밭에는 장에서 파는 채소가 종류대로 거의 다 있다. 오늘 아침에도 파를 뽑으러 갔다가 상추, 루콜라, 신선초, 참나물, 아욱, 근대를 뜯어들고 올라왔다. 씻어만 놓으면 누구라도 먹는다.


구장네 못자리 논두럭에는 돈나물이 뗏장으로 덮여 있다. 대야 가득 훑어 오면 부드러운 부분만 다듬어도 두어 접시가 된다. 나머지 찌꺼기들은 휴천재 울타리 어디에라도 던져놓으면 몇해 후 돈나물 밭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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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를 지은(1994) 얼마 후 아래층 사는 토마스가 마당 끝에 3m 간격으로 독일 가문비나무 여덟 그루를 빙 둘러 심었다. 어찌나 잘 크던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앞산 와불산과 지리산 시야를 가려버렸다. 지리산에 들어와 살면서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는 행복 만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여서 그 중 다섯 그루를 싹 베었다. 지금 마당 동쪽에 정자 옆에 남아있는 두 그루와 서재 앞 한 그루 등 가문비나무 세 그루의 키를 보면 우리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15년 전에 마당 끝 화단에 반송 다섯 그루를 심었다. 그것들이 그렇게 빨리 자랄 줄은 몰랐다. 누구라도 캐가면 고마울 텐데 사방에 소나무가 꽉 찬 세상이니 귀한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정자 가까운 금목서 옆의 소나무와 목수국 옆의 소나무 두 그루는 잘라버리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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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보스코. 어찌나 속상해 하고 아쉬워하는지(집안일에 관한 한 그에게는 발언권만 허용된다). 아랫집 도메니카가  그렇다면 반송의 덩치와 키를 줄이자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엊저녁 그 덩치큰 반송들을 두 여자가 사정 없이 전지하여 가지와 이파리의 3분의 1씩만 남겼다. 보스코 덕분에 목숨을 건진 두 그루는 생명의 은인에게 두고두고 효도할 게다.


보스코가 하는 실생활의 가닥이 얼마나 개념 없고 대책 없는지는 함께 살아본 사람만 안다. 작년 추석 찬성이서방님이 키우던 오골계 다섯 마리를 휴천재로 붙잡아 온 일이 있다. 다음 날이면 잡을 닭에게 최후만찬모이라며 쌀 거의 반 되를 갖다주었다! 죽음을 예감한 닭들이 만찬을 단념하고 풀섶으로 숨으면서 쌀에다 물까지 부어 놓았고, 겨울이 다 가도록 물까치나 어떤 새도 그 쌀을 쪼아먹지 않아 결국 내가 땅에 묻었다.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라도 먹이듯 쌀이라도 실컷 먹으라는 초딩1 수준의 마음씨여서 미워할 수가 없다. 미루가 오늘 걸어온 전화에서도 "아부이가 하도 맘이 따뜻해서 사람들이 저렇게 가까이 찾아오는 것"이라는 촌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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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친정어머니를 돌봐드리느라 부산에 가 있어 지리산에 홀아비가 된 스.선생과 그 옆집에 새로 이사 온 구선생, 여름이면 세상 떠난 남편 곁을 지키러 도정으로 찾아오는 실비아, 그리고 아랫집 도메니카가 오늘 휴천재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식사 중 스.선생님 요리강좌가 대단하다. 냉장고 속에 들어있던 파프리카 + 두부 + 브로콜리+ 김치+ 치즈를 넣고 두루치기를 했다는데  ‘김점수 쉐프의 최고걸작이라고 감탄하는 두 남자 보스코와 구선생(10년이나 마도로스파이프를 물고 원양어선을 탔단다)의 얼굴을 보며 여자 없이 남자의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빈곤한지를 절감하는 우리 세 여자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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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산보길에 마을 초입의 허영감을 만났다. 보스코와 동갑으로 재작년에 아내를 사별하고 혼자 지낸다. 그 집 앞에 접시꽃이 화려했는데 딱 한 포기 남고 흔적이 없어 까닭을 물었다."글쎄, 온통 집사람 흔적인데 집사람 손길이 끊기자 화초마저 자취를 감추는구먼." 아내가 보고 싶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는 "왜 안 보고자퍼, 스무 살에 우리 집에 와서 58년을 살다 갔는데? 새록새록 그립구만. 여기 남아 있는 게 고역이야. 하루라도 빨리 집사람한테 가고자퍼." 문하마을 유일한 홀아비의 소박한 사랑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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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봇길에 미나리냉이와 쥐오줌풀이 저녁어스름에도 곱게 피어 한 아름 꺾어다 우리 마루 성모상 앞에 꽂아드렸다. 오늘 점심 상에서처럼 지난 50년간 라면도 손수 끓여본 일 없는 보스코가 스.선생의 '멍멍이죽' 요리강좌에 보내는 감격과 감탄은 진정이 뚝뚝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책상 앞에서나 석학이요 강단에서는 열강하는 교수님이지만 실생활에 관한 한 초딩1의 보스코를 볼수록 오지랖 넓은 이 전순란의 존재 명분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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