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4일 목요일. 맑음


요즘 새벽 날씨가 너무 쌀쌀하여 낮의 온기에 몸을 덥힌 식물들도 밤에 그 열기를 다 잃고 모두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다. 작년에는 1025일에 화분을 집안으로 들여놓았으니 한 열흘 늦었다. 무엇엔가 시간에 쫓겨 찬바람에 떠는 애들한테 이렇게 고생하다 따순 데로 들어가면 몸이 확 풀리며 더 많고 더 예쁜 꽃을 피울 꺼야. 우선은 극기운동하는 셈 치라고 격려를 했지만 마음은 좀 조마조마했다.


휴천재 마당의 금목서가 피면 저 나무를 심어준 율리아노씨를 추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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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 아침 먹고는 화분들 들여놓읍시다." 구체적인 실생활엔 아예 개념이 없는 그는 대부분 나를 따르지만 늘 '나중에!'라는 단서를 붙이곤 하는데, 이번만은 순순히 내 말을 따른다. 어제 아침 내내 우선 47개 화분을 손질하고 씻어서 들여놓고 난초들과 긴기아난 등 난초 화분 15개는 남겨두었다. 추위 속에 두어 주간 떨게 해야 꽃눈이 생긴다기에 나중에 들여놓기로 했다


작년에도 추위에 고생한 우리집 긴기아난은 겨우내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는데 따뜻한 자리를 찾아 일찍 방안으로 들어간 진이네 긴기아난은 단 한 송이도 꽃을 안 피웠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식물도 고생 끝에 꽃피우는 신센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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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실내화단에서 제일 뽐내는 게 포인세티아인데 몇 해 동안 휴천재 마루와 식당을 화려하게 꾸며주던 화분들이 올여름 밖에서 다 죽고 작은 화분 하나만 겨우 살아남아 허전하였다. 고맙게도 우리집을 눈여겨봐 온 귀요미 미루가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인세티아를 사두었다 건네주어 식당채 꽃밭 한가운데에 멋지게 자리를 잡았다.


어제 오후에는 토란을 캤다. 토란은 원래 물을 좋아하여 텃밭 도랑 옆이 늘 젖어있어 다른 식물은 뿌리가 썩어 살기도 힘든 곳에서 힘차게 잘도 컸다. 토란대는 쪼개서 말려 묵나물로도 해 먹고 쇠고기국에 넣어도 맛이 좋아 스위스 빵기네한테도 잘 말려 한 뭉치쯤 보내곤 한다. 8월 대보름에 먹는 토란국 외에도 토란을 삶아서 감자처럼 먹으면 맛있다는 것을 동남아 친구들이 일러 주었다. 삶아서 식으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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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면 늘 옆에서 말동무가 되고 힘이 되는 드물댁이 어제도 올라와서 토란 캐는데 한몫 했다. 순둥이네 '나무꾼'이 "당신 전화에 대고 날마다 '드물댁', '드물댁' 하는데 그게 누구야?"라고 묻더란다. 순둥이가 했다는 대답이 걸작이다. "어무이를 돕는 친구야. 당신 내가 수도원에서 기도하며 노동하는 '수도자'라면, 드물댁은 말하자면 '3 회원', '재속회원'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야." 참 적절한 표현 같다. 드물댁처럼, 주변에서 필요할 때마다 늘 이렇게 달려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사실 그미는 마을 아짐들 전부를 이렇게 돕는다.


월간 우리 10월호가 도착했다. 장우원 시인의 '여행엣세이'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여행기"가 실렸. 2018년 말에 우리도 네팔 여행을 했기에 시인이 쓴 여행기는 그를 따라서 함께 등산이라도 간 기분이다. 물론 우리는 그곳에서 새벽에 일어나 해돋이에 우뚝 솟아있는 안나푸르나 봉우리를 까마득히 멀리서 건너다 본 게 전부였지만, 지리산 속에 살면서도 알프스니 히말라야니 산을 늘 그리워하는 이 심성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모르겠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28474


히말라야 고산마을들은 길부터 엉망이었고, 그곳 여인들의 삶은 남자들보다 곱절로 힘들어 보였다. 가난을 몸 전체에 둘렀어도 왜 우리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얼굴들이었는지! 우리가 여러 나라를 방문했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인도와 네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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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하염없는 눈물, 까닭 모를 눈물이

어떤 신성한 절망의 심연에서 솟아

가슴에 차오르더니, 두 눈에 고이네,

행복한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

더는 오지 않는 옛 시절 생각할 때면.... (테니슨, “눈물, 하염없는 눈물”)


요즘 부쩍 단풍이 고운 옷으로 매일 색다른 치장을 하고 나선다너무 고와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고 싶은 산자락이 오늘 읽은 테니슨의 저 싯귀를 들려준다. 특히 여국현 시인이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라다시 오지 않는 날들이여...라고 옮긴 마지막 싯귀첫머리 O Death in life는 지나간 나날들이며 떠나간 정인들이 '내 삶에 새겨진 죽음' 또는 '내가 살아가는 죽음'임을 일러주고, 요즘 주변에서 가을 숲에 낙엽 지듯 소리 없이 떠나가는 이들이 내게도 남은 날이 적다고 속삭여주는 여운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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