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일 화요일, 맑고 무더운 하루


별로 특별한 소식이 없는 시골 동네. 어제 아침 일찍 군내버스를 타러 내려가던 기욱이엄마가 지나가는 말처럼 영이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어젯밤 1030분에 시상을 버렸다고 일러준다. 그미가 보태는 한 마디. “동네에 초상이 나는 해는 늘 줄초상이 나는 기라. 아랫말 상동댁이 시상을 버리드만 윗말 구장이 가서 쌍으로 줄초상을 치르게 됐고마. 우리 기욱이 장게갈 때 와줬으니 내사 지금 품앗이로 (문상)가는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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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는 강동근씨의 외손주로 우리 아랫집 진호의 단짝 친구로 서너 살 적부터 여기서 봐왔으니 지금은 서른이 넘었을 게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인을 보아온 세월도 그만큼 된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4621


경상도남자답지 않게 우리를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 오고, 농기계를 다룰 줄 알아 위아래 숯꾸지 다랑논들을 갈아주는 일을 도맡고, 눈 오면 도정으로 올라가는 포장도로를 불도저로 밀어주던 분이다.  3년 전부터 위암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편한 세상으로 떠났다. 문상마을을 주름잡는다는 '강트리오' 세 형제(문정리는 위아래가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 중 둘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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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제 코로나 백신 맞으러 나가는 날이어서 보스코도 강노인 초상에 문상하러 함께 나섰다. 좋은 일은 부주금만 전해도 되지만 궂은 일에는 얼굴을 비치는 게 시골 인심이다. 고인은 81세로 보스코보다 한 살 많았다. 아들 네 개에 딸이 두 개니 식구만으로도 장례식장에 늘어선 조화가 즐비했다. 우리는 아들만 딸랑 두 개니 남들 저렇게 생산할 때 뭐했노?’라는 말을 동네 아낙들에게 들을 만하다. '부모야 뼛골 빠져도 형제가 많으면 지들은 좋은 기라!'라는 할매들 말이 초상 같은 어려운 일을 만날 때면 실감이 난다.


어제 낮 한 시에 AZ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한국언론이라는 게 얼마나 조작되고 더럽게도 선동적인지 나 같은 사람까지 모르는 새에 세뇌되어 은근히 걱정했는데, 일부러 타이레놀을 안 먹었는데도 전혀 이상이 없다. 코로나보다 더 나쁜 병균이 보수언론이기에 가짜뉴스 퍼뜨리는 저것들을 퇴치할 백신을 빨리 개발해서 온 국민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어야겠다.


휴천재 옆의 논을 치다가 우리 텃밭 아래로 흐르는 도랑에 빠져 이마를 깬 유영감님. 작은아들이 우리 텃밭으로 호스를 끌어 논에 물을 대면서 내게 탄식하던 말은 차라리 (아버지가) 농사 안 하시고 직불금이나 받고 노셨으면 좋겠다!” (작년의 경우, 벼 수매해서 180만원 받았는데, 논 갈고 타작하는데 경비 80만원, 유영감님이 논두럭 긁어내는 바람에 무너진 축대를 돌 사다가 다시 쌓은 값 1000만원, 아버지가 논에서 넘어져 병원비 700만원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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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의 말을 들은 터라 내가 유영감님에게 농사 그만 하시라.” 했더니 되레 큰소리를 치신다. “미국놈덜은 낼 지구가 끝장나도 사과나무를 심는다했다 아이가? 내는 사과나무는 엄서. 그래서 낼 지구가 끝장나도 난 쌀나무를 심는 고마. 사과야 엄서도 살제만 쌀은 꼭 있어야 써! 쌀이 젤로 중요한 거여!” 유식하게 스피노자의 말(사실은 그보다 1800년 전에 로마 시인 버질[Vergilius]이 한 말)까지 인용하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긍지를 간직한 농부요 식량주권(食糧主權)을 외치며 죽음으로 논농사를 사수하는 분이니 진짜 애국자가 유영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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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대자 이기자가 거의 한 달 허리가 아프다 해서 도정으로 병문안을 갔다. 도시 사람들이나 친지들은 아프다면 무조건 일을 줄이라고 하는데 눈앞에 일이 널려 있는 판에 줄일 재간이 없다. 협착증에서 오는 통증은 상상을 불허할 만큼 심했던가 보다. 꼬리뼈에 맞은 주사와 거꾸로 매달리는 요법으로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우리와 환담도 나눌 수 있었다.


미루가 신천초를 베러 휴천재 텃밭에 왔다. 효소를 담그는 일이 워낙 막노동이라지만 시골에서 생활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 모두는 우아한 물 위의 자태를 하고서 물속에선 기를 쓰고 다리를 젓는 백조모습이 아닐까? 아무튼 몸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한 게 전원생활이다. ‘잉구엄마가 감자를 캐고 계셨다. 우리 밭에 심은 감자는 늦게 심어 하지나 지나야 캘 생각이라(그래서 이름도 하지 감자’) 공손히 다가가 '감자 좀 주이소'라고 했더니 한 보따리를 안겨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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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까서 삶아서 올리브유에 구워냈더니 신선초를 베어 트럭에 싣느라 열씨미땀흘린 미루와 이사야와 보스코에게 좋은 간식이 되었다. 우리 딸 온다고 아침나절에 구운 케이크도 냉커피랑 내놓았다.


저녁나절 상추를 뜯으러 자기 밭에 올라온 제동댁과 나눈 말. 내가 코로나 백신을 맞았는데 아직까진 암시랑도 않다니까 자기도 낮에는 그러다가 새벽 두 시부터 디비지게 아파 남펜 밥도 몬해 주고 이틀간 죽어라 아팠으니께 기다려 보시라.’ 한다. 과연 어젯밤 자정이 넘자 그미가 예언한 대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는데 요행히 푹 잠이 들어버렸다. 나 같은 극성은 백신주사의 해코지도 힘을 못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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