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8일 화요일, 오후 맑음 


며칠 만에 해가 눈부신 하루. 동네 왼 편 구석 유영감님네 논에서 경운기가 종일 소란을 피운다. 서울 같은 도회지에서야 소음으로 들릴 소리도 산골에서는 사람 사는 소리’ 곧 인기척이어서 듣기 좋다. 그동안 모내기철이면 동네 논이란 논은 다 쳐주던 윗동네 구장도 병이 위중해 입원 신세요, 반드시 자기 '안사람'을 데리고 함께 일 다니던(힘쓰는 일은 죄다 아내가 한다, 우리 집처럼!) 한남마을 젊은이는 요새 코빼기를 볼 수가 없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딴 동네 논일로 바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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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래숯꾸지의 문전옥답(門前沃畓)’ 논들을 누가 짓나 걱정하는 참인데 경운기 소리가 들리니 참 반갑다. 유영감님일 리는 없고 그집 큰아들인 듯하다. 작은 경운기로 논에서도 기계 바퀴가 안 닿는 가장자리를 갈아 놓는 중인가 보다. 그래야 큰 기계가 네 마지기 논 전부를 갈 수 있다. 휴천재 옆에서도 구장댁이 논마다 가장자리를 괭이로 얼마나 정성스레 써레질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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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스코랑 저녁 산보를 하고 동네로 들어오는 길에 유영감님 논으로 올라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스름에 거므스런 형체가 움직이고 있다. 유영감님이 또 논둑을 괭이로 파내고 있다! 내가 핸폰으로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일러바쳤더니, "우짜겠습니까, 당신 평생 해오신 일인데?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답이 왔다! 효성스런 아들다운 맘 씀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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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의 전언(내게 오는 모든 마을통신은 그미한테서 듣는다. 전에는 윗동네에는 강아무개가 'KBS', 아랫마을에는 요안나가 '동아일보'로 통했는데...)에 의하면, 엊그제 유영감님이 당신의 못자리를 손 보러 논에 들어가더니만 논에서 걸어 나오질 못하고 쩔쩔 매더란다. 지나가던 가동댁더러 손 좀 내밀어 당겨달라더라나. 남녀가 내외하는 세대일 뿐더러 "아니,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아재를 꺼내 준다요?" 하고서는 작대기를 건네주자 그걸 짚고서 겨우 논에서 올라 오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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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서는 남녀노소 거의가 친척이다. 내가 알기만으로도 한 동네에서 다섯 명의 처녀와 다섯 명의 총각이 시집 장가를 오가서 살아왔으니 말 다했다! 동네 가장자리에서 살던 처녀라고 가동댁’, 한동네에 살던 처녀라고 한동댁’, 마을 한가운데 살았다고 중동댁’, 본래부터 이 동네에 살았다고 본동댁’, 제 동네로 시집왔다고 제동댁’... 이렇게 문정리 아래쑻꾸지에서 앞집, 뒷집옆집건넛집으로 시집간 처녀들에게 택호(宅號)가 붙여져 지금에 이른그러다 보니 아낙끼리도 모두가 아짐이고 숙모고 제일 멀어야 '시누냄편' 정도다여기서 도회지에서 온 나같은 '외지것'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리고 똑같이 앞집, 뒷집옆집건넛집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마을 입구 (지금은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여자애들 고무줄 끊고 치마 들추었을 총각들은 장가든 아내의 택호에 따라 '가동 양반', '한동 양반', '중동 양반', '본동 양반', '제동 양반'이라고 불렸다. "백리 밖에서는 사돈을 안 삼는다"는 지리산 산골다운 풍속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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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양반들'은 어느 새 모조리 '깨 팔러' 가버리고(= 강건너 앞산 양지바른 언덕에 가서 편하게 누워 버리고) 꽃답던 처녀들만 할미꽃으로 쇠어 집 한 채에 사람 하나씩 들어앉아 있다. 그미들이 낳은 자식들은 너무 빨리 커서 너무 일찍 대처로 나가버리고 할매들이 마실 다니기에 너무 멀리들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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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8! 잡지 시사IN광주가 미얀마에게라는 특집 기사가 실려 광주시민들이 또다시 돋보인다. 40년전의 저 아픔과 고통을 겪고 이렇게 우뚝 서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성원해줄 큰 성님, 어쩌면 '아시아의 등불'(타골이 예언한대로)이 되었다.


('빛고을 광주'가 아시아인들에게 갖는 정신적 위상을 작년에 보스코가 강연한 적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8Dz3uyKfVk&list=PLhNWOcfEeVZXyZBuGRli_6f16t5GWwEeD&index=7)


1980년 광주시민이 민족사에 바친 희생이 하느님 앞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져오는 피의 제사였으니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의 기나긴 민주화의 여정을 뒤돌아보며 '정말 저 언덕에 청청한 소나무처럼 의연히 살아오셨구나!' 경탄케 하는 분들이 정말 고맙다. 오늘 오후 보스코가 전화를 나눈 김성용 신부님의 경우가 그렇다. 1973년에 우리 결혼을 주례하셨고 5.18 시기에 교구사제단을 이끌고 광주시민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신 성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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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핸폰으로 뉴스를 읽던 보스코가 우리 지인 하나를 거명하며 "여보, 이 사람이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됐어!"라던 놀람이라니! 어느 해부턴가 휴천재 아래층을 찾아와도 인사 없이 가버리곤 하더니! 서두에 자기가 젊어서 민주화운동에 어떻게 공헌했는지(나랑 '우리밀살리기운동'도 함께 했다!) 자랑하고서는 갑자기 칼끝을 돌려 586 민주화 동지들이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꼰대들이라고 싸잡는 논설을 쓰다니! 그의 이름을 아는 인사들이 내 핸폰에 장탄식의 댓글들을 올리고 있다! 오늘 5.18에 우리를 슬프게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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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한 마리 황새가 뜸부기[퍼온 사진](벼슬이 참 화려하구나!) 꼴이 되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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