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9일 일요일, 모처럼 맑음


오랜만에 왕산 위로 회색 구름이 열리며 구름 새로 파아란 하늘과 햇살이 보인다. 태양이 안 보인 날이 불과 열흘도 안됐는데, 우울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태양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지구에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처럼 기쁨은 사라지고 암울한 느낌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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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는 친구집에 초겨울에 찾아간 일이 있다20년 전 쯤이다. 점심 먹고 조금 지나자 어둠이 찾아오고 집집이 밖으로 돌출된 창문의 창가에 친구는 촛불을 몇 개고 켰다. 집집이 창문에 펄럭이는 촛불은 주변을 밝히기보다 어둠에 저항하는 빛의 항거처럼 보였다. 촛불로라도 이웃에 사람이 있음을 알리며 어둠의 두려움을 서로 쫓아내주는 스웨덴 사람들의 마음이 돋보였다.


어제 점심, 보스코가 서강대에 재직할 때 강사생활을 하였고, 학과장이자 철학연구소 소장이던 보스코의 일을 많이 도와주다 경북대 전임교수로 간 김교수님 부부가 찾아왔다. 안식년을 맞아 쉴 자리를 찾아 지리산 쪽을 알아보려 온 길이다얘기를 나누다 보니 코로나로 고생을 하는 건 학생들만 아니고 교수들도 마찬가지란다. 대면강의를 못하니 화상강의를 준비하는 일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고, 글과 영상자료로 남기에 다른 학자나 책을 인용하는 일도 까다롭기 그지없단다


용유담의 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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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장차 어찌될지 몰라 사실 모든 게 두렵다. 오늘 주일미사 중 본당신부님 강론은, 오늘 복음이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일화(양승국 신부님 페북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 갈리래아 호수 퐁당 사건’)여서, 두려움을 대하는 신앙인의 태도를 다루었다


두려움은 우리가 모르는, 아마 있지도 않은 대상이 공포가 되어 사람들을 사로잡고 모든 시도와 용기를 박탈하는 악이어서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하시는 분을 믿는  희망으로 이겨내는 길밖에 없다는 말씀이었다. 어떤 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는데다, 아무도 가본 일이 없는 길이기에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그분의 이끄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어제 찾아간 용유담 어느 암자 부처님 얼굴에 띤 평온도 사람을 많이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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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화장실 세 군데마다 걸려 있는 수건들이 땀냄새 곰팡이 냄새를 팍팍 풍겨 해가 난 김에 수건들을 모조리 거둬 삶은 빨래를 하고 나니 내 맘속에 켜켜이 쌓였던 더러움까지 사라진다. 삶은 빨래를 보스코더러 테라스 햇볕에 널게 하니 세상의 그 어느 부자에 비길 수 없는 풍족함에 가슴이 뿌듯했다. (우리집 식사 준비는 아내가 하고 설거지는, 항상은 아니지만, 남편의 몫. 세탁기는 아내가 돌리고 빨래 널고 걷는 일은, 이것도 항상은 아니지만, 남편의 몫이다.)


어제 아침에 빗줄기가 폭포수처럼 내리꽂는 창가에 앉아서 휴천강을 내려다보던 보스코가 한마디 했다. “여기서도 송문교 밑으로 출렁이는 물살이 보여!” 이럴 적마다 우리 네 딸 모두 두 노친네 걱정을 하니까 딸들 몰래 살살, 아침 기도마저 뒤로 미루고 강물이 빠지기 전에 물구경을 하자!며 차를 타고 강으로 내려갔다.


새우섬과 한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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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태풍 루사 때에 절반이 떠내려간 휴천교(休川橋)’가 반토막 남아서 걸쳐진 바위섬 와룡대(臥龍臺)’만 빼놓고 그 넓은 휴천강 전체를 버얼건 흙팅물이 가득 채우고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태풍에 절반이 떠내려간 휴천교옆으로 튼튼한 새 다리가 세워졌고 용유담 가까운 송전(松田)과 우리 동네 문정(文正)을 잇는다 하여 송문교(松文橋)’라고 이름 지었다대자연의 광폭한 위력 앞에 온몸이 쫄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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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동강까지 내려가서 형국을 살피고 오자 해서 달리다 보니 경찰차와 홍수통제로 나온 함양군청 차량들이 간간이 보인다. 세월호 조난사고 때에 "청와대는 조난대비 사령탑이 아니다!"던 보수정권과 달리, 코로나 사태나 각종 대형사고나 이번 장마에 대응하는 진보정권의 차이가 현저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쉴새없이 핸폰에 떠오르는 정부기관의 경보문자도 그 증거다.


동강교 건너편 강변도로는 강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길을 달리며 물구경을 하고 싶은 욕심에 다리를 건너갔더니만 함양군청 트럭이 그쪽 길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그리로 가다 물속으로 미끄러지면 차체 그대로 황천행 고속정!


물속의 하마 모습을 한 동강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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