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7일 금요일, 맑음
얼마 전에 책을 선물받았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저자 지성호님(내 패친이기도)이 보내준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내용과 필체에 반해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아까워 읽는 속도를 늦췄다. 그는 작곡가로 전북대학교에서 30여년간 음악이론과 작곡을 강의했다. 또한 서사음악극 “혼불”(최명희 원작)로 대성공을 거뒀으며 그 외에도 판소리 요소를 담은 “흥부와 놀부”, “논개” 등 그의 창작오페라는 여러 곳에서 수상을 했고, “성녀 루갈다”는 가톨릭계에서도 유명하다. 그런 분에게 책을 받았으니 열심히 줄 쳐가며 빈칸에 메모를 하면서 읽었다.
그가 쓴 글 중에 내 마음에 깊이 남은 이야기는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는다'라는 제목이 붙은 구스타프 말러의 삶이었다. 말러의 음악의 저변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칙칙한 죽음이 널따랗게 똬리를 틀고 있다면서도, 대학에서의 과제물을 통해 말러를 만났고 그를 찾아 헤매던 시절의 저자를 생각하면 감탄이 나왔다.
"작곡가란 우아한 나비처럼 잠깐 세상에 나와 연주와 박수와 꽃다발 속에 파묻히다 그 꽃이 다 시들기도 전에 다시 자기 감옥에 스스로 갇히는 그런 나날을 사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가슴에 꽂힌다. 예술가란, 그런 힘든 일에도 누구에게 등떠밀어서 아니라 "쓰지 않으면 안되니까 쓰는 병, 스스로 고치려고 하지 않는 대책 없는 병, 천형(天刑)으로 얻는 병"이라고까지 한다.
길고 긴 고립과 밀폐로 스스로 절연된 감옥에서 웅크린 채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오선지의 칸을 메워 나가는, 동굴에 스스로 갇힌 웅녀(熊女) 같은 저자의 심정을 느끼는 이는 인생에서 정말 큰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이란다. 내년에 우리 느티나무독서회 친구들과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 10권의 책을 주문했고 인천의 '디모니카'가 주선하는 독서회에도 6권을 보내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빌리지 않고 사서 보기로 한 이후, 내게 온 책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즘 같이 출판사나 작가가 힘든 시기에 나부터라도 책을 사기로 다짐했다. 보스코도 홍해리 시인께서 최근에 펴낸 시집 「이.별.은.연.습.도.슬.프.다.!」(놀북 2020)을 증정받고 10부를 주문하여 주변에서 부모님이나 남편이 치매로 고생하는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10년 넘게 치매 걸린 아내를 보살피면서 기나긴 이별을 연습하는 슬픔(시인께서는 ‘치매행致梅行’이라고 부른다)이 그분이 이 주제로 싸내려온 421편 시 한편한편에 주름살처럼 깊이 새겨져 왔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031612413821987&vgb=culturebox&code=101&total_cnt=155&type=1
수요일. 비가 내리는데 도정 체칠리아가 ‘함양에 가서 식사나 하고 상림이라도 걷자’ 한다. ‘비가 오니까 좋은 날씨에 가자’ 했더니, '좋은 날씨엔 농사지어야지 가긴 어딜 가노!'란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읍내로, 상림으로, 휴천재에서의 넷플릭스 영화감상으로 함께 지내다 헤어졌다. 우리더러 안심하고 잘들 놀라고 그날 비는 하염없이 내렸다.
목요일. 초복이라고 동네 노인회에서 통닭에 맥주와 음료수, 수박으로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했다. 평소 별로 안 내켜하는 보스코가 노인회장의 각별한 부탁이 있었으니 잠시만이라도 다녀오잔다. 과연 남정들 방에는 달랑 5명, 여자들 방엔 26명! 여자가 장수할 확률이 무려 다섯 배다. 남자들은 상위에 음식이 차려지고 접시와 수저로 품위 있게 먹는데, 여자들은 방바닥에 신문지 펴고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천덕꾸러기로 '대접'을 받다보니 잡초처럼 드세져서 우리 여자들의 수명이 길어졌나?
‘남자루 태어난 게 베슬’이라는 이 경상도 땅에서 '대접' 잘 받다 먼저 간 저 ‘양반’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걸 알기나 했을까? 유영감님은 초복도 통닭도 맥주도 마다하고 어제 오후 내내 논두렁에서 뙤악볕을 쬐며 흙을 긁어내 땅 따먹기를 하고 있다. 흙을 파내리다 맨발로 꾹꾹 밟아 다진다.
어제 이재명 지사가 기사회생(起死回生)한 소식을 두고 우리 딸들과 일제히 환성을 올리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군부와 경찰, 정보부와 검찰, 사법부를 장악해온 기득권 세력이 진보측에서 대권을 쥘만한 인사들을 하나씩 제거해 온 70년의 암수가 처음으로 사법부(7:5의 구성을 마련한 대법원)에 의해서 제동에 걸렸다.
멸종위기의 장수하늘소(풀뽑는 내 목덜미에 올라앉았다 내 손가락을 물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저 친일반민족 집단은 김구, 여운형을 암살하고, 조봉암을 처형하고, 신익희와 조병욱 후보를 (교묘히?) 제거하였다. 장면도 총을 맞았고 김대중도 한일합동 공작으로 일본 앞바다에 수장될 뻔했다!
민족사를 벌레먹는 이 집단을 어떻게 박멸한담?
금요일. 비 안 오면 밭 일 해야 한다던 체칠라아 말대로 어제 오후부터 오늘 저녁까지 텃밭에 가득한 잡초를 뽑았다. 어제 저녁은 나 혼자서, 오늘 오후는 책상일이 잘 안잡힌다면서 보스코도 함께, 텃밭에서 풀을 뽑았다.
자기네 삶의 터전을 망쳤다고 최후의 반항을 감행하는 벌레들에게 실컷 물려 내 몸이 온통 벌집이다. 그래도 몸이 이 무리들의 공격에 적응해선지 흰피톨의 활약이 날로 빛난다. 우리 할메들이 낡은 가죽 같은 몸이 벌레한테 아무리 사납게 물려도 이겨내는 건 그만큼 삶에 적응한 강자라는 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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