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6일 월요일, 흐림 


토요일 아침엔 간밤에 내린 비로 습도가 높아 창문을 다 닫아 놓았는데도 방에 널어놓은 어제 빨래가 아직도 축축하다. 아침 늦게까지 자겠다던 꼬맹이엄엘리는 여섯시가 조금 지나 일어나서는 공기가 좋아 조금 자도 피곤이 확 풀린다는 말. 요셉 성인의 본 직업이 목수여서 그분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은 엘리의 남편 조서방도 직업이 목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다보니 늦잠은 아예 잊은 지 오래여선지 아침 6시에는 벌써 윗동네 문상마을 회관과 그 옆에 지어진 제각(祭閣)을 둘러보고 내려와 집을 잘 지었더라는 목수로서의 촌평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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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는 남편이 수감생활(민주화를 위하다 벌써 세번째)을 끝내고 사회복귀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단다. 그러나 목수로서 노동하며 의외로 어려움 없이 쉽게 적응하여 고맙단다. 노동은 사람의 몸과 정신을 함께 치유하고 바로 세우는 명약이다. 아침기도를 함께 바치며 아직도 수감중인 이석기 의원에 대한 사면을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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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서 적당히 차려입고 혹시나 해서 우산 두 개를 챙겨들고 뱀사골로 떠났다. 골짜기 중간쯤에 다다르자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던 구름이 무거워져 비로 내린다. 빗속의 산행은 자연이 주는 친밀감에 젖어 포근하고도 그윽한 만족감을 안겨준다. 옥색으로 부서지는 물결이 바위로 휘감기는 보드라움, 나뭇잎에 지는 빗소리, 조서방은 보스코랑 엘리는 나랑 서로의 속내를 나누는 소근소근 속에 상대를 무한히 신뢰하는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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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송 아래 와운마을의 우리 단골 천년송 식당쥔장에게 전화를 해 묵은지삼겹살을 주문해 놓았더니 돌판을 달궈놓아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묵은지와 삼겹살을 올린다. 고기를 구워먹고나니 볶음밥을 해 주었다. 지나던 부부가 부러운 눈으로 건너다보기에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한 입씩 건네주었더니만 자기네가 집에서 만들었다면서 곶감말랭이한 봉지를 주고 간다. 참 넉넉한 전라도 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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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고 쥔 아짐이 손님을 치르느라 너무 지쳐 있는 듯해서 설거지 꺼리를 정리해 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더니만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파는 산나물을 두 봉지나 그냥 건네 준다. ‘이게 무슨 횡재람?’ 사람 마음에 조금만 선심을 뿌리면 사랑이 주렁주렁 열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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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운마을 뒷산에 올라가 천년송 부부를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10년만에 지리산 골짜기를 찾는다는 엘리네 부부는 물에 발을 담그고 오늘 빗속에의 산행을 추억의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볼수록 사랑스런 부부요 꼬맹이는 참으로 귀여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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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시골집에서 챙겨갈만한 소소한 것들 고추, 오이, 가지, 양배추, 자두, 양파를 트렁크에 싣고서 떠났다. 박하는 조서방이 낫질해서 벤 것을 물로 깨끗이 씻어 묶어갔으니 집에 가서 말리고 가위질하여 시골 다녀온 이바지로 친구들과 민트차를  나누겠지.


농번기로 너무들 분주해서 공소에 올 신자가 아무도 없어 우리 부부도 본당으로 미사를 갔다. 거창이 대구 생활권으로 코로나 환자가 많은 반면, 함양은 환자가 한 명도 없는 청정지역인지라,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는 하지만 미사 때 성가도 부르고 평화의 인사도 나누니 한결 마음에 여유롭다


미사 후 신부님이 현관에서 교우마다 빳빳한 5000원 지폐를 한 장씩 나누어 주셨다. 올 설 때 안 받아간 사람들에게 주는 세뱃돈이라면서. 내년 설까지 이 지폐를 안 쓰고 간직하다 되가져오면 10만원을 주시겠단다. 그동안 미사 헌금도 없어 본당 살림도 힘들 텐데 고생하는 교우들을 세뱃돈으로 격려하시는 목자의 따순 마음이 전해온다.


오후에는 요즘 블루베리 수확으로 눈코뜰새없이 고생하는 진이엄마를 생각해서 얼갈이 열무김치, 부추김치를 담그고, 닭도래탕을 했다. 얼굴이 까맣게 타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진이 엄마를 보면 집에서 놀고먹는 내 신세가 미안하다.


오늘 아침에는 KT 에서 인터넷 시설을 수리하러 왔다. 금요일밤부터 올레 박스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인터넷 작업도 데이터도 온통 두절되었다. 어느날 지구상의 모든 전기가 끊어지고 인터넷이 다운된다면 인류는 나머지를 어떻게 살아갈까? 인터넷에 깔린 정보와 지식은 어디서 복원해낼까? ‘휴천재일기도 올릴 방도가 없었는데 오전에 와서 전선을 새로 깔고나니 인터넷이 바로 연결되고 지난 주간 몫과 오늘 분을 한꺼번에 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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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옆 빈터에 아스파라가스를 조금 심었는데 풀을 뽑고 다독여 놓았더니 모처럼 풀잎으로 포근해진 공터라선지 고양이 새끼들이 뒹굴고 놀며 아스파라가스 줄기를 물어뜯는 장난을 한다. 장난꾸러기들을 쫓아내려고 어젠 계피가루를 으깨서 뿌려보았고, 그 뒤로는 모기약을 뿌려도 고놈들의 장난질은 여전하다. 최후의 처방으로 근처의 탱자나무 가지를 꺾어다 엮어놓았는데 고양이들을 위리안치(圍籬安置)시킨게 아니라 아스파라가스를 지키려고 탱자 가시로 둘렀으니 내가 봐도 참 야박한 쥔아줌마라고 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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