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16일 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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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주일인데도 미사나 공소예절이 없으니까 에브리데이가 홀리데이인’ (Everyday holyday) 백수이지만 뭔가 인생이 아귀가 안 맞아 덜컹거린다. 심하게 바람이 불고 진눈깨비를 몰고 와 매화나무 밑에 세워둔 소나타 지붕이 꽃잎인지 눈꽃인지 모를 봄의 정취에 젖어있다. 겨우내 휴천재 양지바른 남창 앞에서 겨울을 지낸 빈카마이너(Vinca minor)가 보라색 꽃봉오리를 소복하게 올렸다. 저 여린 꽃송이들이 행여 꽃샘추위로 다칠까 염려되어 집안으로 끌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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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마을 앞산 비탈 한가운데를 수종개량한답시고 마치 사내아이 정수리를 이발기로 좌악 밀어놓듯 한 산비탈을 한번 올라가보기로 작심한 터였다. 본데없는 묘목을 회초리 같이 심었을 테고 그것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터이지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건너편 휴천재와 마을을 내려다보고 사진도 찍기로 했었다.


그런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느닷없이 진눈깨비에 새파람이 불어닥친다. 등산은 포기하고, 어제 불을 내고 아직도 새가슴을 하고 있을 비비안나를 위로해주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린다. 뒷트렁크 문이 여러 날 열려 있어서 방전이 됐나보다.


"그럼 차 좀 밀까?" 나서는 두살짜리 한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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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장하고서 하무이랑 시장가는 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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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 찾아가 점프선으로 충전을 해달라고 우리 차 시동이 안 걸려요.“ 했더니 아직도 기저귀차고 겨우 걸음마하는 두 살짜리 한빈이가 하는 첫마디. ”그럼, 차 좀 밀까?“라는 말이 나를 놀래킨다. 어디서 보고 들었을까? 겨우 걷는 저 꼬마에게 소나타를 밀라 하고 시동을 걸어봐? 그러자 한빈이 할아버지 토마스가 행여 손주 망가질까 겁이 났는지 서둘러 자기 차에 점프선으로 연결해 충전을 시키고 시동을 걸어 주었다.
 

우리가 찾아올라간 비비안나는 얼굴에 혈색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단다. 그 동네 '가리점'에 바람 한 점 없기에 지저분한 박스 두어 개를 태웠는데 한 순간 바람이 휘익 불어와 불붙은 상자 한 조각을 산언덕으로 날렸고, 바로 곁에 있던 갈대에 불이 옮겨 붙고 그 불은 삽시간에 부엽토에 붙으면서 비탈을 타고 올라 가지치기 한 소나무 덤불에 옮겨 붙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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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임도가 있어 꼬마 불자동차 세 대가 올라왔고 낮이어서 함양 소방서 헬기가 두 대나 떠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지리산 자락 와불산을 온통 태울 수도 있었으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바로 옆집 케빈이 재작년에 불낸 것을 봤을 텐데도 사람은 내 경험이 아니면 쉽게 배우지 못한다. 지난 주에도 집안 난로에서 옆에 놓아 둔 장작으로 불이 옮겨붙어 끄느라고 혼비백산했다니 앞으로는 조심할 게고 실수도 삼세번은 안 할 게다. 아무튼 올해는 큰돈 벌 상서로운 조짐이었으면 좋갰다.


이탈리아사람들은 코로나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인다(최후의 만찬석도 텅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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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빵기네 식구가 전화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스위스에서도 당분간 학교를 닫는단다. 하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 손주들은, 학교를 닫는 이유를 알기나 하는지, 오늘도 학교 마당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서너 시간이나 하고 돌아왔단다. 슈퍼마켓에 가보니 파스타와 소스가 다 팔려나갔더란다. 그런데 요행히 라면은 고스란히 남아 있더라나, 라면이 그들에게는 간식거리여서...


프랑스에서는 16일 자정부터 식당 극장 등을 임시 휴업시킨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자 15일 저녁 모든 식당가 유흥업소가 사람들로 붐벼 마치 사순절 카니발을 연상시키더란다. 그래 맞아, '내일 세상 종말이 온다'고 누가 예언하고 그 말이 맞을성 싶으면 사람들은 경건히 종말을 준비하기보다 '죽기 전에 실컷 먹고 마시고 쾌락을 누리자!'고 나설 게다. 


빵고신부 말대로라면 서울에서도 코로나를 전염시킬까 학교에 오지 말라 했더니 모조리 롯데월드. 용인 에버랜드로 몰려가 거긴 애들로 미어 터진단다. 집안에 가둬두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 두발 달린 짐승을 어찌 목줄 묶어서 집에 가둘 수 있으랴. 어서 빨리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어야 하는데...


다행히 우리나라 충남대 서상희 교수팀이 세포배양기술로 코로나19 백신 항원 생산에 성공했다는 며칠 전 기사가 희망을 준다. 백신을 생산하기까지 몇 달이 더 걸리겠지만, 독일 바이오 회사에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미국에 백신을 넘기라. 우리 멋대로 팔아먹게!"하는 트럼프의 뻔뻔한 수작을 보고 분개했는데, 부디 우리가 빨리 백신을 개발하여 백신이 필요한 모든 나라, 모든 병원에 싼 값으로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저 불한당 양키가 배우도록.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이 문재. “어떤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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