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14일 토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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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다 하더라도 자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자기 일에 충실하다. 얼마 전만 해도 강가에 버드나무가 불그레 물을 빨아올리더니 어느 틈에 연초록으로 흐르는 강물에 얼굴을 담근다. 며칠 후면 봄바람이 뽀얀 버들강아지를 얼러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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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소담정의 초대로 산내에 가서 순두부 백반을 대접 받았다. 워낙 손님들이 없는 나날이어서 거리도 식당도 텅텅 비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용유담에 큼직하게 별장촌을 만들어놓은 사람이 그곳에 있던 절까지 사들여서 능수매화나무로 정원을 가꾸어 놓았기에 들러서 구경하였다. 다른 것보다 본당의 부처님상이 귀품을 띄어서 보기 좋았다.
 

어제는 산청 산속에서 오롯이 남편과 두 아들 네 식구가 가업('팔보식품')을 일으키느라 고생하는 미루네와 프란체스코회 성심원 디모테오 수사님이 휴천재 나들이를 오셨다. 성심원 어르신들을 염려해서 아무도 오가지 못하게 성심원 다리부터 막아버려 답답하던 터였으리라(울 엄마 계시는 '유무상통'도 방문금지가 한 달 넘었다). 모든 방문과 만남을 기피하고 모든 필요를 주변에서 해결하는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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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손님대접을 장만하느라 이웃집 텃밭에서 물까치가 겨우내 뜯어 먹다 남긴 봄동배추를 캐다가 다듬어 된장국을 끓이고, 밭두렁에서 흰민들레를 뜯어 나물을 무치고, 우리 텃밭에 한창 자라오르는 쪽파로 김파무침을 마련했다. 다행히 광어회가 있어 안셀모가 좋아하는 회무침을 하고 모짜렐라와 토마토로 카프레세를 하니 프란치스코가 좋아해서 묵은지랑 함께 그럴듯한 손님상이 됐다. 매일 우리 두 식구만 밥을 먹다가 젊은이들이랑 함께하는 식탁은 이미 커다란 잔치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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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네는 일년전 우리 식당채에서 뜯어 놓은 무쇠난로를 새로 지은 공장에 가져다 놓겠다고 점찍어놓았지만 오늘사 트럭을 몰고와서 무쇠난로(네 남정이 들어야 트럭에 실렸다)와 연통, 한참 뗄 참나무장작을 트럭에 실어갔다. 임실 계시던 시인 사제 최종수 신부님이 선물해 주셨던 난로다.


저것들이 차지하고 있던 정자옆 빈자리에는 매발톱을 심을까? 범의꼬리, 아니면 실속 있게 울릉도취를 심을까? 마음이 먼저가 땅을 매만진다. 하느님은 농부시니 그분의 모상인 인간도 흙을 매만질 때에는 설레임을 느낀다. 하느님이 흙을 조물락거려 아담을 빚으실 적에,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내서 (가루로 갈아 넣어 본차이나급) 하와를 빚으실 적의 그 기분이 이러지 않았을까?


오후에는 미루네 주고 남은 묵은 감자에서 눈이 돋은 것들을 골라 조각내어 감자밭에 틈틈이 덧심었다. 저녁에는 소담정에서 얻어온 팬지를 식당채앞 나무화분에 심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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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코로나가 창궐하여 우리보다 몇 배 사망자를 낸 북이탈리아 비엘라에 사는 의사친구 안나마리아 오띠나에게 보냈던 성탄 카드가 주소불명으로 돌아왔다. 배달을 하다가 성가시면 가끔 이런 사고를 치기도 하는 게 그곳 우편사정이다. 그런데 문선생님이, ‘오띠나가 우리 소식을 궁금해한다고 알려줘 보스코가 길게 이메일을 써보냈더니 오늘 그 답이 왔다.


너무나 힘들고 의료기관마다 격리시키는 양성환자들이 차고넘치고 의약품이나 의료용품(장갑과 마스크)도 턱없이 모자라 속수무책이란다. 2차세계대전에나 보았던, 모든 통행과 집회가 금지된 비극적 상황인데다 의사나 거리에서 계도하는 경찰마저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다니, 우리나라 마스크 타령은 복에 겨운 소리다. 오늘 우리가 전화를 건 카르멜라도 오스티아 거리가 텅빈 죽음의 도시라고 한탄한다. 시장에 가거나 약국에 가는 일 아니면 모두 외출이 금지되었단다.


한일간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입국금지한 나라가 100개가 넘었고 미국이 유럽사람들 입국을 다 금지시켰으니 가히 세기말에나 봄직한 고립과 봉쇄를 자초하고 있다. 학교와 직장이 모조리 폐쇠되고 사람들의 모임이 모조리 금지된 삶은 그야말로 세계대전이 일어난 전시상황에서나 볼 만한, 그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이다. 해마다 한번씩 이런 전염병이 돈다면 인류는 어떻게 생존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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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대구에서 코르나로 노인들이 죽었다. 나도 늙었는데 왠지 젊은이들 대신 우리 늙은이들이 죽는 것이 도리일 것 같은 마음이 들다가도 이정록 시인의 "의자를 읽고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나이든 분들이 다 가신다면 이런 지혜와 인생의 위로는 누가 해 줄 것인가? 세상에 난리가 나도 한세상 따숩게 보듬고, 구부정한 걸음으로 생색 없이 가만히 부축하는 그 삶을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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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에 산보삼아 앞산을 올라가 보자고 했는데, 운서마을 윗산에 연기가 허옇게 오르고 불길이 치솟는다. 작년과 거의 같은 장소라서 혹시나 하고 공소식구 비비안나에게 전화를 했다. 작년에는 그 옆집 캐빈씨’(미국에서 살다 왔단다)가 쓰레기를 태우다 산불이 나서 15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는데, 이번엔 그미가 쓰레기를 태우다 그만 산불이 났단다. 산은 연기로 가득하고 헬기가 두 대 번갈아 물을 퍼다 붓고 함양일대 불자동차는 다 등장했다 자칫 지난겨울 곶감농사로 번 돈이 화재진압 경비로 다 날아갈 성 싶어 안타깝다. 나도 어느 핸가 봄날 저녁에 휴천재 잔디밭을 태우다 불을 내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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