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0일 수요일, 장맛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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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감자 이삭 주으러 갈까?” 어제 마천 젊은이들이 감자를 캐갖고 떠난 자리엔 먼데서 봐도 하얗게 잔 감자들이 널려 있었다. 옛날 같으면 새끼감자도 졸여서 먹고, 한 구석이 썩은 감자까지 주워다 우물가 독아지에 담아 물을 갈아주며 썩혀 감자녹말을 만들어 감자떡을 해먹곤 했다. 그런데 식량이 풍족해지자 저렇게 버려지는 감자(흙속에서 그래도 부지런히 자랐는데)가 많은 게 내게는 우선 아깝고, 보스코는 어려서 누나를 따라 고구마 이삭줍기를 했던 따스한 추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이삭을 줍고 싶었나 보다. 그에게 누나, 이모, 외할머니의 기억은 팔순 나이까지도 참 따스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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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시간이지만 오늘 장마가 든다고 했으니 비오기 전에  얼른 갔다 오자 나섰다각자 큼직한 시장가방 하나씩을 들고 감자밭으로 갔다 가밀라 아줌마도 아랫채에서, 유영감님도 다랑논에서 새벽같이 일을 하다 우릴 보고는 살만큼 사는 사람들이 이삭을 줍다니?’하는 눈으로 쳐다보지만 우리는 즐겁기만 하다.

밭주인 유영감님이 도지를 준 밭이어서 눈여겨봤던지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한 아줌마가 어제 한 바퀴 돌며 한~ 자루나 주워 가서 별로 없을 거라고 일러준다. 그래도 흙속에 숨어 있던 꼬맹이들이 얼굴 반쪽만 내밀고 우리를 반긴다. 시장가방이 채워졌을 때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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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감님은 그 시간에 벌써 논에 잡초를 반은 뽑아내고 굽은 허리를 펴며 논에서건 들에서건 말 한마디 나눌 사람 보기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날 만나면 말이 길어진다. 그분의 중얼거리는 듯한 사투리는 절반밖에 못 알아듣고 요즘 부쩍 귀가 안 들리시는지 갈수록 목소리가 커진다.


어제 당산나무 밑에서의 일. 노인회 회장 구장님이 "낼모레가 초복인데 이젠 더운데 삼계탕 할 사람도 없고, 통닭이나 한 스무 마리 읍내에 가서 사다먹자"는 제안을 내놓았다동네 아짐들은 간장양념 매운 양념한 호돌이두마리치킨을 시켜먹자고 부언하였다. 그러자 유영감님은 "거 맛도 없고 비싼 통닭 말고 읍내 시장 입구에서 한 마리에 7000원하는 닭튀김이나 사다먹자!" 하신다. 여자들이 "거 기름 냄새 나고 뻣뻣해서 못먹어요!" 하니까 "거 다들 돈지랄이여!" 버럭 소리를 지르고 가버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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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니 누가 말을 받아 주겠는가? 아무튼 나를 보자 일손을 멈추고 고라니가 논에 들어온 이야기부터 논둑이 무너져 다시 쌓은 일, 도지 준 젊은이들이 농사짓는 기술이 우리 농사꾼보다 훨~ 낫다는 얘기까지 끝간 데가 없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는데... "아저씨, 쪼기 우리 냄편이 기다리고 섰는데요."라고 손가락질을 했더니, "어어어? 어여 가봐."라며 날 놓아주신다.


비가 더 내리기 전 텃밭에 내려가 고추랑 상추, 오이, 가지를 따는데 드물댁이 반갑다는 얼굴로 밭으로 들어선다. ‘모기한테 뜯기며 밭을 맸다는 보고에 치하를 해주고서 이참에 쪽파를 좀 심자면서 우리 정자에 걸어 말린 쪽파 봉지를 내려놓았더니 그미가 뿌리마다 일일이 가위질하여 밭고랑에 심는다. 


아짐들마다 요즘 들깨밭에서 윗대가리를 자른다. 너무 웃자라면 씨앗도 적게 맺고 바람에 쓰러지지만 위를 쳐 주면 싹이 더 많이 나와 소출도 많아진다. 내가 들깨를 심지 않았음을 아는 아짐들이 나더러 삶아서 나물 하라고 우물가에 놓고 간 검은봉지가 서너 개. 우선 씻고 삶아 꼭 짜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볶아먹어야지. 정자에서 말린 씨앗들도 정리해서 비닐 봉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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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후에 소담정 도메니카가 들렀다. 오랜만이어서 반갑다. 그간 상주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난 얘기며, 어려서부터의 고생 얘기며, 병원을 관두고 생활인으로 자연과 살며 회복되어가는 과정까지 쏟아지는 빗줄기만큼 많은 얘기를 나누다 갔다. 사람들에게 받은 아픔은 사람과 더불어 얘기나누는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치유되는 신기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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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미가 간 다음 저녁 8시까지 부엌 냉장고 속을 '총정리'했다. 해마다 한번씩 하는 '냉장고대방출!' 내다버리는 것만도 커다란 함박으로 두어 개 나온다. 끼니마다 반찬을 새로 하기 때문이기도 히고, 보스코가 새반찬도 한두 젓가락 하고 마는 식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기를 쓰며 자정을 넘긴 이 시간에도 장마는 가랑비로 쉼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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