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8일 금요일, 맑음


7월이면 상림 연밭에 연꽃이 필 철이다. 시아네 가족이 오면 서울에 함께 있느라 자칫 올해 연꽃을 놓칠 것 같아 보스코더러 연꽃을 보러 가자 했다. 연꽃은 오전에 잠깐 피고 정오가 넘으면 꽃입을 닫아 버린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잠깐 보여주고 새촘히 돌아앉는 얄미운 가시내. 상림은 검푸르게 건장한 녹음으로 성장했지만 연꽃은 그 많은 연밭 중 하나만 조금 피고 나머지는 꽃대도 안 올렸다. 저러다 어느 하루 느닷없이 홀랑 함께 피고서는 무뚝뚝한 연밥만 주먹 내밀듯 내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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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은 가을에 한 번 더 호사를 하는데 꽃무릇이 나무 밑마다 카페트처럼 깔린다. 햇살에 비쳐 투명한 빨강색이 루비처럼 빛나는 때면 눈길을 어디다 고정시켜야 할지 몰라 어지럽다.


수련 일부와 연꽃 몇 송이만 보고서도 별로 섭섭하치 않은 까닭은 그 신선한 숲길에 들어서면 어는 꽃과 비교해도 지지 않는 나무들의 아름다움과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쪽으로는 지리산이 레이스처럼 겹쳐 보이고 북쪽으로는 덕유산 자락이 한가하게 노닐고 있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오로지 '좋다!‘ ’참 좋다!'만 되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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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루네 가족에게 함께 연꽃구경을 가자고 초대를 했는데, 오늘은 미루가 동의보감촌에서 다도를 설법하는 중이라 못 오고, 이사야는 근무 중이란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현역(現役)이었다. 오늘이 바로 미루 친정어머님 기일이라 오후에는 강진을 간다기에 우리가 동의보감촌으로 가서 육회비빔밥 한 그릇씩을 먹었다


신입사원 안셀모도 엄마와 함께 왔는데 재미라고는 없는 이 산골에서 효도 차원에서가업을 이어가는 모습이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성숙하고 기특하다. 공장 짓느라 지칠 대로 지친 미루부부에게는 보약이 따로 없다. 사랑스런 작은아들 안셀모가 바로 인삼녹용보다 더 좋은 보약임을, 산청 약초한방박물관이 양심적이라면 꼭 밝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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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네가 친정어머니 탈상 불공을 드리러 강진으로 서둘러 떠나고 우리는 강변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와서 불어난 강, 아마도 물 반 고기 반일 물길에서 백로와 해오라기를 바라보았다. 물지고 나면 고기들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데, 바로 그 길목에 버티고들 서 있었다. 뱃속에서는 쪼르륵허기진 소리가 나는지 머쓱하게 나를 쳐다본다, '그림에 떡이라는 말, 아줌만 알랑가 모를랑가?' 하는 표정으로. 나는 저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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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옆 논두럭에서 예초기를 돌리던 구장님. 자기가 예초기 돌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자기 핸폰으로 좀 보내달란다. 우리 동네에서 예초기를 제일 잘 돌리는 사람이 그분이다. 어떻게 굴곡진 언덕까지 저렇게 예쁘게 저토록 깔끔하게 깎는담! 절에서 사월초파일에 귀여운 사내애들 머리 깎아 동자승(童子僧) 만드는 솜씨다. 아마 면사무소에 무슨 보조금을 신청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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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내일 아침에 서울로 떠나려던 계획을 갑자기 바꿔 서둘러 짐을 싸서 밤 830분에 휴천재를 떠났다. 후배들과 내일 찾아갈 곳이 금촌이었고, 차들이 없어 내 차로 가기로 약속했던 일 때문에, 아무래도 한신 후배들과의 약속인지라 꼭 지켜야 할 것 같아 모처럼의 밤운전을 감행했다.


325Km3시간 30분 만에 돌파하여 정확하게 자정에 서울집에 도착했다. 금요일 밤 고속도로는 전국민이 불금에 갔는지 한가하기 이를 데 없어 신나게 달렸다. 이엘리가 내 야간 상경 운전 소식을 듣고서 걱정이 태산. "어머, 난 선생님 말씀 잘 듣는데 선생님은 내 말 왜 안 들어요? 내 속 좀 썩이지 마세요. 제발 야간운전 좀 하지 마세요." 하지만 두 눈 다 인공수정체를 넣은 다음 밤눈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모른다. 


우리가 지리산에서 구름을 날라다 풀어놓기라도 했다는 듯, 우리가 골목에 차를 세우고 대문을 들어서자 비가 후드득거린다. 숲에 빗물지는 소리를 서울에서도 들으며 잠드는 복을 누릴 수 있다니! 빵기가 두 손주 '방학행진' 사진을 보내왔다. 그 구역 모든 학교가 같은 날에 두 달 방학에 들어가고, 방학보다 신나는 일이 없는 아이들은 환경지키기 테마로 시가행진을 하는 사진! 다음 주면 저 귀여운 생명들이 실물로 우리한테 도착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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