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22일 금요일, 맑음


어제 오후부터 읽기 시작한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한번 손에 잡으면 덮기 힘든 매력이 있어 밤 한 시에나 잠들었다. 실은 담 주 월요일 독서회에서 발표해야 하는 책인데 미국이라는 나라 퍼스트레이디의 얘긴데다 오바마 정권이 우리나라 남북문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됐고, 저희끼리 잘 먹고 잘나가는 얘기여서 비싼 돈 주고 사서 읽는다는 게 껄끄러웠다. 이런 종류의 위인전 비슷한 자서전은 안 읽기로 평소에 맘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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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아침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는데 오늘은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날이 밝았고 어제 춘분이 지났으니 방한용으로 침실 서쪽창 앞에 세웠던 병풍이라도 치워야겠다는 생각에선지 보스코가 병풍을 접어서 들고나간다. 그제만 해도 방한으로 창마다 붙였던 뽁뽁이를 떼자니까 '언제 갑자기 꽃샘추위가 닥칠지 모르니 4월까지 기다리자' 했던 사람이다. 그 때 내 말이 '그래 그냥 두자요. 12월이면 또 추워질 테니까.'였는데....


골바람이 잦아들자 그새 마음이 변한 듯, 12월까지 기다리는 건 무리라는 듯, 내 극성스런 재촉 없이 성나중씨가 먼저 움직이다니 기특도 하다. 그가 병풍을 걷어간 자리 밑에는 추위를 피해 집안에 겨울나기 더부살이로 들어왔던 딱정벌레가 수북하게 죽어 있다. 겨우내 침대 위로, 베개 위로 떨어지고, 때로는 잠들어 벌린 입으로(아마도 습기를 찾아서) 들어오던 놈들인데 건조한 방안공기에 말라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 시체가 수북하다


살아남아보겠다고 온갖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에 비해 결과가 허망하면 힘이 빠지는 게 미물이든 인간사든 매한가지.... 요즘 김정은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들 시선이 참 안쓰러운걸 보아 우리가 남북으로 한 핏줄임에는 틀림이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태극기에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기까지 흔들며 속속들이 일장기로 휘감고 몰려다니는 '토착왜구들'만 빼놓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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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말하자면,  열심히 일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많이 웃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평범한 흑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데 흑인, 특히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지켜보노라니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나도 깊은 연대감이 느껴졌다


요즘 트럼프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의 실체야말로 구원의 가망성이 전혀 없는 절망 그 자체다오바마나 클린턴이 정권을 잡았던, 거짓으로 잘 포장되었던 민주당시절도, 부시나 트럼프 같은 국제깡패나 날강도로 훤히 드러나는 공화당시절도,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래도 미셸이라는 한 여성의 치열한 자기성찰과 자신의 길을 일관되게 가려는 정신은 높이 살만하지만 저기서도 '도덕적 인간들의 비도덕적 사회'밖에 보이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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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네가 겨우내 뒷산 블루베리 농장에서 가지치기를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농사야 여름에나 짓는 줄들 알지만 쌀농사가 아닌 한, 겨울이라고 놀 날이 없다. 아랫집 사람들을 보면 농사를 아무나 짓는다고 나설 일이 아닌 성 싶다


진이네 강 건너 펜션에 귀농한 세 가족이 집을 빌려 단체로 들어왔단다. 그들이 우선 진이네 블루베리 농사를 돕기 시작했다. 귀농하는 가족이면 함양군에서 6개월간 집세(매달 30만원)를 지원한다는데 셋 중 한 가정은 애들 다섯에 부부까지 일곱 식구란다초딩, 중딩은 군내의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위로 큰누이 둘은 사이버대학에 다닌다나. 참 용감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귀농했던 사람들의 실패를 들어보고 그들이나마 제발 귀농에 성공했으면 좋겠다겨우내 고생하다 국민학교 동창 부부들과 함께 45일 중국여행을 떠나는 진이네를 보며, 일한 뒤에야 노는 모습을 부디 저 사람들도 보고 배우길 빈다. 봄이 되었는데도 날씨가 차다고 바람 끝만 바라보는 나로 말하자면 '완존 날나리 농사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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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네가 오후에 잠시 들렀다. 공장을 짓는 인부들이 어지간히 속을 썩혀 둘 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 귀요미네가 산청에 자리 잡는 일이 뭔가 뜻있고 보람 있을 일이어서 이리도 마가 끼고 훼방이 심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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