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4일 목요일, 맑음


내일이면 그가 온다는데 이 정체모를 불안감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은 그가 어디에 가 있고 언제 온다는 확실한 다짐이 있으니 짧은 기도로 마음을 다잡지만, 혹시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뒤라면 기약할 수 없는 세월에 얼마나 암담할까때로 생각 없이 남편 흉을 신나게 보다가 내 앞에 앉아 듣고 있는 사람이 이혼을 한 친구거나, 더 염치없는 일은, 남편을 여의고 힘없이 입 다물고 있는 지인일 때 그 무색함이라니! 흉볼 남편, 바가지 긁을 남자가 없다는 상대방의 서러움을 도대체 헤아리지 못하고... 


크기변환_IMG_20190312_113125.jpg


크기변환_IMG_20190313_115415.jpg


전화를 하는데도 안 받고 카톡도 안 열어보고 한참 열을 받다가 그곳 시간이 새벽 1시라는 것을 깨우친다. 밤엔 자야 하고 잠이 들면 들쳐가도 모르는 속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나도 맘놓고 딴 일을 할 수 있다.


크기변환_DSC00004.JPG


크기변환_DSC00020.JPG


크기변환_DSC00120.JPG


크기변환_DSC00124.JPG


집안을 치우고 나서야 오늘 만나 보기로 한 이웃 전영임씨 생각이 났는데 마침 전화를 해왔다. 우리집에 올라오는 골목길에 있는  한평 책방 '쓸모의 발견' 주인 조지영씨, 그 골목과 이웃하는 우이천로44길에 사는 전영임씨, 개천변 예전에 홍국표씨가 지은 다세대 빌라에 사는 유경씨, 그리고 미아사거리에 사는 쌍문1동 주민자치회 지원관 김대선씨, 네 사람이 '빵기네집'엘 찾아왔다.


크기변환_20190314_113748.jpg


김대선씨는 도봉구 시민단체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어디든지 달려가 도와주는 분이고, 세 여인은 (자연과 마을, 사람들을 잇는) ‘징검다리라는 모임의 회원들이란다. 전체 회원은 7명이고 유경씨가 회장이란다. 70년대말 이 동네에서 벌이던 우리의 운동(그게 운동이라는 생각도 못했다)은 태영-윤영엄마(엄인숙), 은경-정민-미선엄마(유음철), 유진-유민-형기-훈기엄마(이부혜), 빵기-빵고엄마(나 전순란), 이렇게 넷이었고 우리는 이름도 없이 어디댁이거나 누구엄마로 활동했다


그 다음 세대로는 김말남과 전순란이 콤비를 이뤘고 가까운 이웃들이 우리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연대 서명과 인원 동원에 참여하여 구청을 찾아가 문제 해결을 요구할 때마다 숫자로 힘이 돼주었다. 마을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의 전적인 신뢰와 말남씨의 치열한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은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었다. 물론 뒤에는 말남씨가 '사회운동의 사부님'으로 모시던 보스코가 있었고.


크기변환_20190314_150841.jpg


오늘 온 징검다리 회원이 얼마 안 된다지만 우리가 활동해본 결론은 승패는 숫자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 물어보니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퍽 스마트하다. 우리가 도로(우이동길 본선과 우이동길 42길)나 산(북한산 소귀고개), 나무(방학동 은행나무와 우이동 솔밭공원)와 돌(우이천을 파헤쳐 자연석을 팔아먹는 공무원들)을 지키기 위해 무지한 인간들과 싸운 반면, 이들은 사뭇 스마트했다.


크기변환_20190314_170921.jpg


크기변환_20190314_170946.jpg


크기변환_20190314_165951.jpg


지역아동선터의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데리고 가서 열매를 따먹고 시냇가에서 개구리 알을 찾고 여름이면 개천에서 물장구치고 놀게도 하고,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경찰이 무얼 하는지 질문하고 경찰놀이를 하고, 중고등학교 학생들과는 꼼꼼한 마을탐사를 하며 빵기네집은 왜 빵기인가?’ 질문을 받고 상상의 대답을 들었단다


마을동아리도 만들고 경로당 노인들과 인터뷰를 하여 그 대답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알아내고, 나무와 풀에 대한 탐사로 사진을 찍고 글도 써서 책을 엮기도 했단다. 말하자면 평화로운 세대, 동네에 먹을물이 해결되고, 다닐 길이 확보되었으니 하드바운드를 채울 소프트한 활동을 한단다. 제발 우리 때처럼 무지막지하고 불법탈법한 관공서의 행패가 더는 없는 세계이길 빈다.


그런데 이명박 때 오세훈이 저질러 놓은 저 흉측한 더파인트리건축물을 부산쪽 삼정기업이라는 시행사가 인수하였다는데, 시행사와 주인은 다를 텐데 소유주는 중국기업이라는 소문이 맞는지? 관련 인허가를 다 확인하고 해결한 후 재개한다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어떤 시민단체가 눈을 부릅뜨고 감독할지? 모두들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일이다.


419일에 자세한 마을탐방을 하기로 정하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니 우리 뒷집이 황석영 작가’. 재호네집 자리에 안정효 작가’. 가발집 앞이 채희문 시인’, 바리네 가게 옆이 동요 반달윤극영 할아버지’, 골목 위 돈댓집은 중앙대 총장을 하셨던 임성희 문교부장관댁이었다. 그 외에 우리집 앞골목만 해도 마을 사람들에게 쌍둥이네집’, ‘베갯집’, ‘토니화장품집’, '삼성집'등으로 불리며 한때 잘 알던 사람들이 남긴 추억의 옹기조각들만 주워 담았지만 이런 후손들이 그걸 귀하게 알겠다니 고마울 뿐이다. 이 젊은 세대는 방학동 연산군묘 주변에 겸재의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찾으러 다닌단다.


크기변환_20190314_153240.jpg


한때는 이 전순란도 20대말 풋풋한 새댁으로 이 땅을 밟았는데 이제는 낼모레 70대를 바라보는 '역사'가 되어 이 땅을 떠날 차례구나 생각하니 앞산 인수봉('수천년 묵묵히 솟아 있는...')이 더 귀하고 더 든든해 보인다.


크기변환_20190314_15243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