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3일 일요일, 맑다고 하기엔...


1997~98년 우리 부부가 로마에서 안식년을 지낼 때 살레시안 신학생 셋이 함께 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98년 봄엔 셋이서 부제품을 받았다. 이태석, 백광현, 신현문 세 사람 모두 살레시안대학교에서 한국을 빛내는 에이스들이었다. 우리가 이태를 살던 산갈리스도 카타콤바 경내에 있는 VIS(Volontari Internazionali Salesiani)에서 보스코더러 한국을 소개하는 강연을 해 달래서 내가 아예 한국의 날행사를 꾸린 적 있다. 그때 로마에서 공부하던 살레시오수녀회 안젤라 수녀님과 쌍벽을 이뤄 사물놀이를 곁들여 고전무용을 기막히게 추어낸 사람이 바로 신현문 신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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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 해 셋은 사제서품을 받았고 이태석 신부는 곧바로 아프리카로 떠났다. 혼신을 다해 남수단 톤즈의 청소년들을 돌보다 2008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2010114일 하느님 나라로 갔다(바로 내일이 아홉 번째 기일!).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빵고신부가 신현문 신부의 부고를 알려왔다! 작년 여름부터 혈액암으로 투병중이었다. 


오후부터 문상을 받는다 해서 2시에 살레시오 관구관을 찾아갔다. 거기 창백하고 파리하게 신현문(발렌티노) 신부가 누워있었다! 소성당 가득히 수녀님들이 찾아와 연도(燃禱)가 올려지고 2시에 첫 번 위령미사가 바쳐졌다. 살레시안이 죽으면 매 시간 연도와 미사가 거행된다, 장례식까지... 가난한 청소년들과 나누느라 삶이야 식탁이야 가난하지만 기도는 푸짐하게 바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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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부는 정말 별난 사람이었다. 이태석 신부가 들려주기로도 둘이 같이 로마 시내를 걷다가 진열장 안에 반짝이가 마구 박힌 무대의상을 보고서 엄청 감탄을 하며 좋아하더니, 자기 같으면 엄두도 안 나는데, '저걸 꼭 사야지!' 하더니 기어이 사다 입고는 엄청 뽐을 내더란다


신신부가 바닷가 내리의 청소년 수련원 원장으로 있을 때 나더러 하루 와서 스탭들에게 이탈리아 요리를 해달래서 갔는데, 그날 밤 캠프에 온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 앞에서 흰옷 정장에 백구두에 검은 라이방을 쓰고 등장해 기막힌 춤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 ‘에어로빅 선생을 했다던 그는 인생도 정말 맵시 있게 춤추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오늘은 흰색 정장에 백구두도 무대의상도 안 입고 사제의 제의차림에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누워있었다.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기일 하루 전날, 오늘 새벽 041분에 단짝친구를 만나러 떠났다. 56세의 아까운 나이로!


생전의 신신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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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위령미사를 집전한 문신부님은 강론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면 내가 제일 먼저 죽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잘 가라는 인사를 받을 줄 알았는데, 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늘 함께 살아온 수도회 어르신들이 떠나시더니, 요즘은 나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의 죽음을 맞게 되니까 하느님이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부르시는지 순서가 헷갈린다.’고 한탄하였다


여기 누운 신신부님을 보고는 늘 맵시에 신경을 쓰고, 인생도 맵시 있게 살고 간 사람이라고들 얘기하는데, 내가 정작 이 자리에 누웠을 때 사람들에게 과연 무슨 얘기를 들을까,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맵시있는 삶을 생각하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병상을 일년내내 지켰던 실비아도 와서 이번엔 신신부를 보내며 9년 전의 이신부와의 이별의 아픔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영이별에서 내게 남겨진 숙제로 살레시안들의 가난한 아이들 돌봄을 함께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그니가 사랑스럽다.


최수사님이 상주노릇을 하면서 우리에게 뭔가를 자꾸 챙겨주며 먹으란다. 자기 어려서 할머니께서 조선병(朝鮮病)은 다 못 먹어서 생긴 병이다. 먹고 자면 낫는다!' 하시더란다. 아이들이 뛰면 배 꺼진다, 뛰지 말라!’ 말리시던 할머니는 벌써 떠나셨고, 그 할머니 앞에서 뛰던 아이도 저렇게 중늙은이가 되었고, 요즘처럼 남의 장례식에 자주 가는 걸로 보아 내게도 떠날 날이 머지않다는 얘기를 새기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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