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9일 토요일, 맑음


아침 630분이면 도우미 아줌마가 와서 커튼을 올리고 엄마를 화장실로 데려간다.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다녔는데도 화장실로 가서 용의검사를 받은 엄마는 표정이 없다. 침대로 돌아와 털썩 쓰러지듯 눕지만 소변보러 다니느라 설친 잠을 마저 자라고 놓아두지도 않는다. 7시면 벌써 아침밥을 날라와 먹으라고 채근한다. 병원이고 시설이고 모두 첫새벽에 밥을 먹이고 오후 5시면 저녁을 주니 정상인은 그 긴 밤새에 배가 고파 잠도 안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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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눈 딱 감고 딸년의 처분을 기다리는데 그까짓 하루 엄마 편을 들어 이렇게 새벽밥 먹여 일어나게 하느냐?’고 따지고 싶지만 참고, 어제 사온 소머리곰탕을 데워서 상에 올리고 '엄마, 나 배고파 빨리 밥 먹자!'고 밥상에 초대한다. 그래도 딸이 배고프다니까 내게 눈을 한번 흘기고는 밥상에 앉는 엄마. 울 엄마 고집은 일대가 다 아는데 딸인 내게는 한풀 접어주신다.


지난 20여년 실버타운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 울 엄마 '조정옥 장로님'이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지난여름부터 조금씩 이상해진다고 도우미 아줌마가 나한테 일러바친다. 서너 살 때까지 온갖 귀염을 독차지하던 아이가 7살이 되어 자아가 발달하면 말썽을 피우고 사고를 치듯이, 엄마도 90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삐뚤어져간단다. 늘 기다리고 양보하던 분이 앞에서 걸리적거리면 사정없이 밀쳐버리고, 각방 앞에 놓인 밀차나 휠체어를 저 기다란 복도 끝까지 밀어다 놓거나, 방밖에 놓인 신발은 모조리 책상 밑이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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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엄마랑 도우미가 방에 함께 들어서는데 두 켤레의 신발을 집어들더니 꽤 멀리 떨어진, 승강기 앞에 놓여 사람들이 승강기 기다리느라 앉는 소파 밑으로 던져 정확하게 골인을 시키더란다. 처녀시절 이화여전 농구선수 국가대표 넘버 6’의 멋진 풍모다. 아줌마가 신을 되가져 오면서 남의 신발 왜 던져버려요?” 라니까 내가 안 그랬어!”라고 시치미를 떼시더란다. 남의 방 앞에 놓인 남의 휠체어를 저만치로 밀고 가는 걸'현장에서' 붙잡아 나무라도 오리발은 마찬가지!


평소 당신 방 앞에다 한 번도 신이나 밀차를 놓아두지 않고 방안에 들여와 신발장에 정리해 넣고 밀차도 똑같은 자리에 반듯하게 주차시키는 게 엄마의 성격이다. 전에 딸네집에 오셔도 그릇을 다 찬장에서 꺼내 크기대로 모양대로 정리를 해주시던 엄마. 그러니 방방의 문밖에 놓인 신발이나 밀차들이 엄마 눈엔 다 어질러지고 정리할 살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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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가 이렇게 딸년처럼 이해해 주냐구!' 증세가 더 심해지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면 26인실로 모셔야 한단다. 그래서 26인실에 내려가 보았더니 이건 6인실 병실이나 꼭 같다. 평생을 주부로서 마님으로서 큰 집 거느리고 살림하다,영감 죽고 운신하기 힘들어하자 자식들한테 떼밀려 모든 살림살이 다 정리하고 양로원 방 한 칸에 들어와 살다가, 드디어 방 한 칸마저 내놓고 사물함 하나에 침대 하나로 떠밀려가신다? 그 다음엔 반 평도 안 되는, 사방이 막힌 나무상자 속에 몸을 뉘어야 하고, 그 다음엔 그 몸마저 재가 되어 단지 속에서 최소 20여년 머물거나 땅속에 들어가 곧장 흙으로 돌아가야 할 길 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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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치매가 심해졌나 싶어 '내가 누구 게?' 물으면 '누구긴 누구야, 큰딸 순란이지?' '엄마, 그럼 쟤는 누구야?' '우리 큰사위 성염이지 누구긴? 얜 날 바보로 아나봐!' 정말 멀쩡한데 왜 그 부분이 망가졌을까


보스코가 어젯밤 다른 방에서 혼자 자며, 내게 흔들리지 않고, 원대로 숨을 안 쉬고 잤는지(수면무호흡증) 지리산 오는 찻속에서 계속 자다가 졸다가를 반복한다. 오전, 오후, 집에 와서까지. 그러니 맑은 정신으로 반듯하게 살다가 숨을 멈추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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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생 호천이 말이 매형 죽는 건 괜찮은데 누나 과부가 되는 건 싫어!’ 이모도 64세에 하루아침에 과부가 됐다. 아침에 목요탕에 간 이모부가 귀갓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절망감과 상실감은 아흔이 넘는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된단다.


그래서 내게 신신당부하신다. '제발 성서방 건강 챙겨서 늙어죽을 때까지 함께 해로하려므나! 서방 그늘이 광동 80리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는지 남편 없으니까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얼마나 절실한지....' '으흑~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그저 '하느님, 평상시 우리 기도대로, 우리 두 아들 기도대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함께 살다가 같은 날 같은 시에 함께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매달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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