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미소와 예수님의 얼굴
 
"그들이 눈을 들어 살피니 아무도 없고 예수 그분만 보였다." (마태 17.1~9) 
 
몇 해 전 결혼 주례차 경주땅을 난생 처음 밟게 된 필자는 토함산 석굴암의 부처님 상을 보러 갔다. 의연한 본존상이 짓는 그윽한 미소에서 필자는 이제껏 세계 어느 곳에서 본 형상보다 위엄있고 경건한 인간상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인류가 돌에 새긴 가장 위대한 작품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석굴암의 아미타불을 들게 되었다.

 

사람은 볼품이 있어야 한다. "미모는 말없는 추천장"이라는 속담도 있다. 늠름한 풍채에 멋진 외모는 여인의 눈길만 끄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선망도 일으킨다. 아리따운 여인을 바라보는 모든 남성의 눈빛에는 "아, 드디어 나타났구나!"하던 아담의 경탄어린 저 첫마디가 서려 있다.

 

"주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오늘 복음에 나온 베드로의 아첨은 극히 정상적이다. 그런데…. 해마다 사순절이면 필자는 대웅전에 모셔진 본존,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와 성전에 내 걸린, 피투성이로 숨진 그리스도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교한다. 두 분의 얼굴 표정은 고통과 악에 맞서는 인류의 두 가지 대응을 보여주는 위대한 표상이다.

 

과연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 나병환자의 뭉크러진 손발과 눈자위, 단말마에 허덕이는 간암 환자의 몸매에서 누가 사랑의 매력을 느낄 것인가? 그런데 비닐과 넝마로 초막을 지어 놓고 행려병자를 데려다 임종을 지켜 주는 수녀가 있고, 부모가 버린 정신 박약아를 위해 젊음을 바치는 젊은이가 있고, 소록도와 음성 나환자촌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이가 있다.

 

그들은 타볼산에서 잠들었다 도대체 어떤 헛깨비를 보았기에, 감겨진 임종자의 눈에서 부활의 불꽃을 본다고 하며, 가련한 비렁뱅이의 얼굴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했노라 말하는 것일까? (샤를 델레 [김정옥 역], <소용없는 하느님>, 가톨릭 출판사, 1995 참조).

 

주춤주춤 골고타까지 뒤따라 간 베드로, 그는 십자가 위에 피투성이로 숨진 죄인의 얼굴을 보며 타볼산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기억했을까? "그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 옷은 빛처럼 하얗던" 그 광경을?

 

빨갱이라면 온 가족을 처형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온 저 동포를 보며, 전라도 사람이라면 학살해도 괜찮다고 경멸해 온 저 겨레를 보며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하는 눈이 우리에게 있을까? "에이, 신앙인들이 차마 그러겠어요?"라며 의아해 하는 분들에게 몇 가지 사실만은 꼭 상기시키고 싶다.

 

광주학살이 한창이던 그 주간, 어느 교구를 다녀온 외신 기자가 그곳 고위 성직자에게 들었다며 필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전라도는 본래 좌익이 많았어요. 이번 사태도 그자들이 일으킨 거에요!"... 학살이 끝난 직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상임위를 통해 "군부와 광주시민은 서로 화해하시오!"라는 이상한 성명을 발표하고는 지금까지 15년 간 침묵이다!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광주사태의 진상규명은 역사에 맡기자고 주창하자(93.5.13), 김수환 추기경도 "광주의거 진상규명 역사에 맡기자!" (93.5.23 평화신문)고 신앙인에게 호소하였다.

 

이태 후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자(95.11.17) 김수환 추기경도 관훈클럽 강연에서 (95.12.20)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잘못된 과거를 단죄하고 권력과 금력에 의한 부정부패를 척결하자!"고 호응하였다.

 

그러자 지난 2월호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김남수 주교는 광주사태를 '민란'이라고 부르면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는 우리를 5∼6년 동안 지배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호소하였다. 그는 "남북 대치 상황에서 우리끼리 이렇게 싸워야겠는가?"였고, 수천 억 부정 축재나 5·18의 조사가 "국민 화합의 저해 요소로 작용할까 그게 걱정"이었다. 그리하여 김남수 주교는 월간 조선 기자에게 빅토리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신부님'으로 칭송 받는다.
(1996. 3. 3.: ㉮ 사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