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스와 가야파의 대화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루가 l4,7-l4) 
 
안나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낫다'고 한 자네의 발언은 역사에 남을 명언이었네. 산헤드린 거수기들한테는 안보보다 씨먹히는 명분이 없네. 내란음모죄를 그 자가 기어코 인지(認知) 안하면 비수를 뽑으라구.

 

가야파: '네가 메시아냐?'는 한마디 심문으로 결단을 내야겠습니다. 그러나 장인 어른께서는 정말 소요가 없으리라고 보십니까?

 

안나스: 이 사람아, 우리 병력과 안토니아 요새의 수비대면 예루살렘 주민을 몰살시키고도 남는다니까. 허나 소요는 없을걸세.

 

가야파: 헤로데도 만 달란트에는 완전히 눈을 뒤집었습니다. 그 자의 고향 나자렛이나 가파르나움 정도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깡그리 쓸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피 맛에 주렸나 봅니다.

 

안나스: 그 돈이 무슨 돈이라구. 유다 땅에서 돈푼깨나 만지는 자들이 죄다 나서서 염출한 돈이야. 이 기회에 갈릴래아 세를 아예 뿌리 뽑아 달라는 거겠지.

 

가야파: 빌라도는 좀 꺼림칙합니다. 그 자가 돌변하면 어떻게 합니까?

 

안나스: 박수부대를 밀고 들어가라구. 민족주의를 발본색원하라는 건 로마의 기본 정책이야. 한사코 그 자를 두둔하는 척하다가 언도를 때리겠다는 총독의 교활도 보통은 아니지. 그래도 모르니까 기억해 둬. 왕으로 자칭하는 자를 방면하는 건 모반죄로 걸린단 말야.

 

가야파: 알겠습니다.

 

안나스: 그러니까 이번 파스카는 우리네 축제일세. 나는 말일세, 헤로데 대왕이 하스모네아가의 씨를 말리던 때를 기억하고서 이번 계획을 착상했지. 십자가에 줄줄이 매달아 놓고서 그 앞에서 자식들을 도륙하고 처첩들을 겁탈시키더란 말야. 바로 그거야. 이 병신 같은 민중이 저 나자렛 놈한테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게 내 속을 뒤집어. 그놈들이 빠스카랍시고 몽땅 모여든 마당에서 그놈들의 메시아를 매단다... 이 얼마나 통쾌한 보복인가! 난 3년을 벼르었다구. 놈들의 희망이요 상징을 내가 못 박아 죽이는데도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칼 한 자루 못 휘두르는 쌍판대기들을 상상해 보게나. 나는 이 살인극을 만끽할 생각일세. 꼭꼭 씹으며 음미할 작정일세.

 

가야파: 산헤드린은 소집되어 있습니다, 밤이 깊었으니 애들을 키드론으로 건너 보내겠습니다. 이번에는 모세의 빠스카 이래로 가장 멋진 빠스카가 되겠습니다.

(l980.8.31: ㉰ 연중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