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아 호숫가의 숯불구이 조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요한 21,1-19) 
 
"최후만찬"은 르네상스 이래로 서양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였다. 그 그림들을 보면 유독 불편하게 시선을 끄는 인물이 있다. 가리옷 사람 유다! 열 한 제자들은 경외심과 놀람으로 주님을 우러르고 있는데 유다만은 돈주머니를 쥐고 얼굴을 딴 데로 돌리고 있다.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주님이 일곱 제자와 생선 숯불구이와 빵으로 오붓한 조반을 드시는 장면을 화폭에 담는다면 여기에도 불편한 관계의 인물이 하나 나온다. 주님께 되도록 멀리 떨어져 앉아 그 큰 몸집을 다른 제자 등 뒤로 감추느라 애쓴다. 고개를 수그린 채 부지런히 고기뼈만 발라내고 있다.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몹시 조심하지만 귀만은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듣고 있다. 그는 시몬이다.

 

불안한 조반이 끝났다. "시몬!" 무심결인 듯 잔잔한 음성이셨지만 시몬은 화닥닥 놀란다. "예!"라는 대답이 너무 컸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올 것이 왔구나 싶다. 나머지 이야기는 사제가 봉독하는 줄거리 그대로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오면서는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타볼산에서는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족례 때에 "그러면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곧잘 하던 시몬! 다락방에서는 장담을 하고 동산에서는 무작정 칼을 휘두르던 시몬! 가야파의 저택에서 당신의 눈총을 뒤통수에 받으며 뛰쳐나가 슬피 울던 시몬! 스승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숨이 턱에 차서 골고타로 달려오던 시몬! 방금도 예모를 차린답시고 겉옷을 두르며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시몬!

 

비록 천방지축이기는 하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제자! 저처럼 우직하게 사랑을 표하는 제자를 어느 스승이 미워하겠는가?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정말 사랑하느냐?" 죄 주시거나 꾸짖거나 비양거리시는 말씀이 아니었다. 온 인류의 죄악을 용서받아 내신 이 마당에 누구의 잘잘못을 시비하시겠는가!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는 당부를 하시자는 실마리였다. 이 말씀이 "너를 교황으로 세우노라!"는 뜻보다는 "내 양들이니 부디 잘 돌보아 달라!"는 청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섬기러 오셔서 벗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신 분의 마지막 말씀이 긴 여운을 남긴다. "나를 따르라."  (l980.4.20: ㉰ 부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