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하베림!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다." (요한 20,19-3l) 
 
"샬롬 하베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철석같이 믿던 스승이 돌아가시자 유가족들은 유다인이 무서워서 모두 한 집으로 모인 다음 문까지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 그들에게 건네신 첫마디가 '샬롬!'이었다. 평화, 안심, 안보 얼마나 절실한 말인가!

 

지금 철든 나이로 제단 앞에 나온 우리 중에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구겠는가? 연탄 값 오르지 않을까? 큰놈 학교 성적 떨어지지 않을까? 월급 안 오르나? 이 달 곗돈 어떻게 장만한담? 남편 한눈 팔지 않을까? 잔걱정이 가슴을 꽉 메워 분심이 될 것이다.

 

큰 근심도 많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되려고들 저러는가? 누가 잡을까? 석유는 제대로 사들여 오는가? 천정 모르는 물가가 잡힐까? 툭하면 간첩 출현이니 38선이 터지지나 않을까? (바람잡이들이 하도 오랫동안 안보로 재미를 보아 은 탓에 온 겨레가 전쟁 공포로 속병이 들어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이 저러다가 미국, 소련이 맞붙으면 우린 앉아서 떼죽음 아닐까?

 

속앓이에 살림 걱정, 국가와 세계사가 뒤숭숭한 판에 '샬롬'이라는 주님의 인삿말이 귀에 들어왔을 성싶지 않다. 그러나 방금 무덤에서 나오시어 손의 못자국이며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며 하시는 말씀이다. 빈말 같지는 않다. 그이 속에 열 번도 더 들어갔다 나왔으면서도 남편 말을 믿는다면,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는 정치인들도 지도자랍시고 그 공식발언을 믿는다면, 우리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분의 말씀은 믿을 도리밖에 없다. 그분을 두고 딴 데로 찾아갈 임자가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그분 말씀처럼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의 죄든지 (교회가)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세례와 판공성사로 죄를 벗었으니 영혼이 평안할 수밖에 없다. 외아들을 보내신 만큼 세상을 사랑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배워 우리도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다 보니 심간이 편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고, 거짓과 사기와 음모를 삼가니 이웃간에 평안하다. "나는 죽었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고 영원무궁토록 살 것이다."는 말씀을 고즈넉이 받아들이니 "갓난아기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입당송)을 달라고 보채면서 내 운명과 집안 살림, 나라의 장래와 세계 역사를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겠다.  (l980.4.13: ㉰ 부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