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나가자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마르 l, l2-l5) 
 
사순절이 왔다. 성탄절처럼 '기다리고 기다리던' 계절은 아니다. 가슴에 돌을 얹어 놓은 듯하고 소화가 안 되는 듯한 계절이다. 이마에 재를 바르면서는 이번에는 그래도 떳떳하고 그럴듯한 선공(善功)을 세워 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전에 성주간입네 부활절입네 하여 더욱 떨떠름한 한 철이다.

 

사순절이면 성령이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신다. 손바닥만한 이 나라에, 덕지덕지한 서울 땅에 어디 광야 곧 "빈 들"이 있을까만, 사람마다 마음속에는 영혼의 광야가 있게 마련이다. 광야는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다, 자동차 소음과 사람의 욕설과 내 욕심이 와글거리지 않는 적막한 땅에 이르면 우리는 하느님을 생각할 겨를이 생긴다. 세례받고 열심이던 시절, 사람들을 사심없이 위하던 "젊은날의 순정"(호세아 2, 2)이 생각난다. 그래서 사순절이면 명상의 집이며 본당 피정이며 신심서 읽기 등이 참 이롭다.

 

광야는 또한 두려운 곳이다. "저 끝없고 두렵던 광야,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고 물이 없어 타는 땅"(신명기 8, l5)이요, "타조들이 깃들이고 들귀들이 춤추는 곳"(이사야 I3, 20)이다. 확확 타오르는 열기와 아지랑이에 가려 먼데서 오는 그림자가 천사인지 악마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몇 끼니 단식하며 허기지면, 예수님처럼 돌이 빵처럼 보이고 빵이 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 푼을 자선하고 십자가의 길을 몇 번 돌고 담배를 끊고 하다 보면 열심해져서 성당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을 것같이 우쭐해진다. 우리 눈에 온갖 허깨비들이 비치기 시작한다. 내게 치유의 은사가 내릴 듯하고 위대한 부르심이 하달될 것 같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벌여도 다 이뤄질 듯한 착각이 든다. 온 세상이 자기 앞에 무릎을 끓고 경배할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광야에서 길을 잃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하였다(욥기 6, l8-I9).

 

광야는 또한 하느님의 축복이 내리는 터전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사막에 석유가 솟아났듯이, 미국의 네바다 사막과 이집트의 사막이 개간사업으로 옥토로 변했듯이, 메마르고 엉겅퀴나 자라고 독사 새끼들이 우글거리는 곳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마음의 사막에 은총의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생명의 냇물이 흐르며, 그곳에 크고 정결한 길이 훤하게 트여, 하느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거룩한 길'이 되는 것이다(이사야 35장).

 

사순절이다. 광야로 나가자. 거룩하고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어 하느님을 만나 뵙자. 죄 많고 메마른 영혼에 은총의 물길을 끌어들여 옥토로 꽃피우자. 그리고 돌아와서 외치고 다니자.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라고.   (l979.3.4: ㉯ 사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