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다이어트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마르코 2. l8-22) 
 
"자식과 계집이 먹는 것은 쥐 먹는 것 같다"는 속담이 있다.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가 먹는 것은 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생쥐가 먹는 만큼이나 적게 보여 아깝지 않다는 뜻이다.

루이에블리의 「사랑의 회복」에는 산뜻하고 정겨운 이야기가 많다.

 

어머니가 정성껏 걸게 차린 저녁상에 둘러앉은 가족은 맛있게 또 배부르게 먹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다. 게걸스럽게 먹는 동생들의 식욕이 대견하여 맏이가 침을 삼키면서도 젓가락을 삼가고 뜸하게 갖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맏이가 한결 듬직하고 미더워 보인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부모와 조상을 낳아 주신 어른이시기에 마땅히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라면 여느 부모들이 그러듯이, 당신이 내리신 은혜와 차리신 밥상을 우리가 실컷 누리고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담배니 술이니 몸이니, 감사로이 받잡고 절도 있고 도리에 맞게 쓰면 하느님은 더없이 즐거워하신다. 한 가닥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형제간에 욕심부리거나 투정 않고 골고루 나눠 먹는 마음씨일 것이다.

 

수요일부터 시작하는 사순절을 앞두고 오늘의 복음은 단식과 재계의 바른 뜻을 일깨워 주신다. 사순절이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처럼들 여긴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부활하여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스도 신자에게는 주님을 추모하는 감상적인 애도와 단식의 시기가 없다. 기뻐하고 항상 주 안에 기뻐할 뿐이다. 울어야 한다면 하느님께, 이웃에게, 자신에게 성실 못한 자기 죄를 두고 울어야 한다. 특히 가난하고 불우한 형제들을 사랑 못한 죄를 울어야 한다.

 

아버지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차린 밥을 굶고 남 앞에 얼굴을 찡그리고 술 담배를 끊고서 신경질을 부리는 일이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이 주신 것을 나보다 못사는 형제간과 나누어 먹고, 그들에게 상냥하고 정 깊은 눈길을 보내고, 담배 한 개비, 술 한잔을 그들과 나누는 일일 것이다. 사순절 동안 다이어트를 겸해서 단식을 하고, 쇠고기 대신 오랜 만에 생선을 먹어 보고, 평소에 못 끊던 담배를 끊어 보자고 나선다면 그것은 몸보신이지 하느님께 어여삐 보이는 종교 신심이 아니다. 자신을 속이지 말자.

 

형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신랑이 가까이 계시는 한, 우리의 단식도 우리의 것을 형제들에게 바치는 '나눔' 이라야 참뜻이 있다.   (1979.2.25: ㉯ 연중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