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그렇긴 합니다만,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마태 l5,2l-28) 
 
우리가 쓰는 말로 미루어 배달겨레를 빼놓고는 모두가 오랑캐다. "되놈", "왜놈", "양놈"이라고 낮춰 부르는 일이며, 손바닥만한 땅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평안도와 함경도를 곧잘 헐뜯는 우리 품성으로는 오늘의 복음을 십이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예수께서는 겐네사렛에서 방금 따로 지방으로 넘어오신 참이었다. 마침 서울에서 왔노라는 바리사이파 사람과 율법학자가 "당신이 자칭 메시아라면 왜 유대교 전통을 무시하는 거요?"라고 시비를 걸었던 뒤라 저으기 마음 편치 않은 길에 가나안 여자가 붙들고 늘어진 것이다. 정결(淨潔)의 율법을 무시한다고 욕을 먹은 터수에 부정한 이방인, 더구나 여자와 상종한다는 것은 더죽 꺼림칙했다.

 

스승은 말씀이 없고 마귀들린 딸의 어미는 갈수록 악착같아진다. 어느 어머니가 이런 기회에 염치를 가리겠는가! 제자들은 보다 못해 "한푼 줘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는 투로 한 마디 거든다. 스승의 말씀은 더욱 의아스러워진다. "비록 내 자식들(이스라엘)은 배불러 못 먹겠다고 내밀어 놓지만 그 음식(구원)을 너희 강아지(이방인)에게 던져 주기는 아깝다." 그러나 이 정도에 물러가는 어미는 없다.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로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은 구원을 저버리고 해 뜨는 나라에 사는 우리 배달겨레가 복음을 받았다고 해서 우쭐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만원 버스에 가까스로 올라탄 사람이 다음 정거장부터 "그만 태워라, 고무 버스냐?"고 고함치기 일쑤다. 강아지가 부스러기를 얻어먹었다고 해서 어느새 주인 아이들 행세다. 그것까지는 좋으나, 남도 같은 처지에 오르는 것이 못마땅하기 쉽다.

 

하느님은 지엄지존하셔서 믿지 않는 자는 죄로 판단하시고 죄인들에게 영벌을 내리시며 이 불의한 세계와 인간들에게 진노하고 계시다고 우리는 곧잘 말한다. 하느님이 악인 선인을 가리지 않으시고 햇볕과 비를 내리시고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하시며 만사를 선으로 이끄심이 못마땅해 보인다. 오만하고 옹졸한 선민의식이 우리 마음에 싹튼 징조다.

 

그러나 천당에서까지 부동산 투기로 한밑천 잡을 생각은 말자. 하늘에는 방이 많아서 아무리 몰려들어가도 자리가 붐비지 않는다. '나의' 하느님이지만 '오랑캐들의' 하느님도 되시고 미워 죽는 '이웃들의' 하느님도 되신다. '우리' 아버지이시다. 하느님은 당신 것을 당신 마음대로 처리하신다. 하느님의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오늘의 복음에서 새삼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l978.8.20: ㉮ 연중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