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 구경은 잘했는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이 안되십니까?" (마르 4.35-40) 
 
세상에 구경거리 중 최고의 구경은 불 구경 물 구경이 최고라지요! 몇 해 전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미국 CNN 방송국의 생방송,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이 날이면 날마다, 하루 종일, 게다가 뉴스 시간에는 특별 방송으로 틀어 주던 그 '흥미진진한' 장면들, 미국의 미사일과 폭격기와 전쟁 영웅, 이라크의 폐허와 죽음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계속 미국과 사우디에게 지원과 원조를 받았던 후세인, 그리고 "쿠웨이트 침공 때는 미국이 간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외교관의 꾀임에 넘어간 그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죠. 결국 미국과 유럽이 벌인 '십자군 전쟁'의 표적이 되고 나서야 후세인은 정신을 차렸지요. 서방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언론이 마귀라고 말했던 그 사담 후세인을 기억하시나요?

 

이제 CNN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울로 몰려오는군요. 드디어 지구촌이 주목할 불구경이 일어난 곳은 한반도가 되었나 보네요. IAEA 사찰 결과 북한이 핵무기를 지니지 못했음이 확인되었나 봅니다. 미국이 저렇게 자신있어 하는 것으로 보아서 말입니다. 한반도의 외무장관이 찾아가 아무리 애걸을 해도, 30년간 땀흘려 쌓아올린 한반도의 경제와 건설이 허무로 돌아간다고 우는 소리를 해도, 람보는 온몸이 스물스물한가 봅니다.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더라도 불놀이는 재미있으니 말입니다.

 

미국에 사는 교민은 자꾸 전화로 안부를 물어 오는데, 정작 서울 시민은 생필품 사재기도 않네요. 아마 대통령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탓일 겝니다. 게다가 언론의 큰소리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소년의 거짓말로 들리나 봅니다. 그뿐인 줄 아세요? 독재자가 그토록 인권을 탄압하고 정치를 그르치고 사람을 죽이던 세월을 겪은 탓인지 "그저 이 땅에 전쟁만 안 나게 해주시면 뭐든지 맘대로 하소서"라던 보수주의자와 매춘언론이 부채를 들고 설치네요.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타 죽는 것이 시원하겠다."고 맞장구치네요. 바다 건너 섬나라는 동해에서 떠오는 난민선 한 척도 안 받아 줄 터인데 무엇을 믿고들 저러는지...

 

이렇게 배달겨레의 운명이 침몰 직전인데도 주님은 배고물에서 코를 골고 계시네요. 제자들이 주님을 흔들어 깨우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이 안되십니까?"하고 다그치는데, 주교님들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특별기도마저 바치시지도 않네요.

 

해방 직전 한라산과 지리산, 그리고 6·25 새벽에 보도연맹원이라고 학살당한 겨레의 죽음이 한국전쟁이라는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을 초래하였다는 신학적 해석도 있지요. 그렇다면 그 전쟁의 무서운 책벌에도 우리가 민족 공동체로서 정의와 평화를 세우지 못하고, 이 땅에서 함께 저질러 온 온갖 불의와 이기심과 증오를 뉘우치고, 그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을 무서워해야 하겠거늘 현실은 정 반대네요. "뭐, 물좀 새들어오다 말겠지. 배가 가라앉기까지 하겠나?" 이거나 아니면 "저 사람이 뭔데 바람과 호수조차 가라앉힌단 말야? 될 대로 되라지" 그러네요.   (1994. 6.19: ㉯ 연중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