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는 주지 말라(?)
 
"제자들이 떠나 성안으로 가서... 해방절을 준비하였다." (마르 14,12-26) 
 
어느 날 우리 본당의 주일미사 풍경


"여봇, 돌아와 앉지 못해욧?"
"아니 왜 그러는 거야?" "잔말 말고 들어와요!"
"왜 그래? 내 참..."

강단있는 아내는 영성체 행렬에 끼어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의 소매를 기어코 잡아끌어 제 자리에 앉히고야 만다. 이어서 아내는 미사 수건을 가다듬고 남편이 서 있었던 영청체 행렬로 들어서면서 주위 사람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다. "고런 짓을 하고 와 영성체 해? 성사도 안 본 주제에…."

 

낚시간다고 주일 미사를 빠졌는지, 밤새 꼬집히다 꼬집히다 못 견뎌 룸살롱에 갔다고 자백했는지, 하여간 남편은 죄인이다. 저 착하고 열심한 여교우는 죄인인 남편이 감히 성체를 영하는 죄악을 막고자, 남보는 데서 남편을 망신시키는 일 정도는 주저하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가 제일 무서워하는 죄는 모령성체(冒領聖體)이다. 영성체를 하려다가 마음이 조금만 꺼림직하면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바울로의 경고가 무서워서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8-29절). 그리하여 영성체는 죄인과 의인을 가르는 표시가 된다. 남편이 간밤에 못된 짓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아내려면 주일 미사에 끌고 가서 영성체를 하나 못하나 지켜보시라! (그래함 그린의 유명한 소설 <사물의 핵심>은 바로 이를 주제로 삼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경고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나? 사람은 요상한 동물이라, 성경마저도 제멋대로 읽는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고린도서의 바로 앞대목에 정답이 나온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 온 것을 먼저 먹어 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21-22절).

한 성당 안에서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 착취하는 고용주와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죄다. 그러니까 사회적 책임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 누렇게 뜬 옆 사람의 얼굴은 외면하고 황금색 성작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남 줄 줄 모르면서 보약 먹듯 성체를 받아먹는 사람은,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 한다면 자기의 영원한 심판을 먹는 셈이다.

 

"경건하게 성체를 모실 순간입니다. 교우들, 즉 세례를 받으신 분들만 나오셔서 영성체하시기 바랍니다." 혼인미사나 장례미사에서 으례히 듣는 해설자의 안내 말이다. 그래서 성체는 신자와 비신자를 가르는 표가 된다


"천상빵인 우리 음식 자녀들의 음식이니 개에게는 주지 말라." 성체축일에 부르는, 성 토마스가 지었다는 송가의 한 구절. 그래서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성당 미사 중에 영성체를 못한다. 성체는 이단자와 정통 신자를 가르는 표가 된다. 아아, 도대체 어느 바보가 성찬을 '일치의 성사'라 이름 붙였을까?   (1994. 6. 5.: ㉯ 성체와 성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