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동방박사 이야기

"유대인들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 말을 듣고 헤로데 왕은 물론 그와 함께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렸다. (마태 2,1-12) 
 
다음은 스리랑카의 예수회 신학자 피어리스가 현대인에게 풀이해 주는 <동방박사 이야기>이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하여 깜깜했다, 베들레헴은 지척간인데. "무슨 소리야? 유대인들의 왕은 헤로데 대왕이시고 대왕의 아드님들은 다 커서 장가 갔다구. 요 몇 달은 후궁들이 애를 낳은 일도 없데..."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가톨릭도 아닌 동방 사람들이 별을 보았다. 불교도, 유교도, 아마 무신론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 별을 "그분의 별"이라고 부른다. 하늘에 새로 떠오른 저 별이 어느 신비로운 인물, 세상을 바꿔 놓으실 분이 오신 표징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찾아 나섰다, "산을 넘고 들을 건너서..."

 

성직자들과 성서학자들이 궁궐로 동원된다. "장소인즉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의 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관변신학자들의 역할은 끝난다. 그리고 물러가 버린다. "경전에는 말하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분이 실제 올지 안 올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솔직히 이런 얘기를 안 믿습니다."(예루살렘의 사제들, 율법의 수호자들, 계시의 해석자들, 전통의 보호자들, 이스라엘의 길잡이들은 단 한 사람도 동방 사람들을 따라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들은 성경을 별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헤로데는 안보회의를 소집한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나신 분이 있단다. 환영식을 준비

하여라. 성대하게." 안기부는 점성가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확히 알아본다. 공수특전단에 비상히 걸린다. 그런데 안보회의는 이 소문을 종교인들의 몽상, 점쟁이들의 수작으로 결론 내렸을까? 아니면 자기네 정보망을 너무 과신했을까?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찾거든 내게도 알려 주시오. 그러면 나도 가서 그분께 경배하겠소." 외국 관광객 안내원을 가장하여 기관원을 왜 딸려 보내지 않았을까? 하마터면 끝장날 뻔한 하느님의 작전이 헤로데의 그 작은 실수로 파탄을 모면하였다.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들만 떠났다. 동방인들, 이교도들만 떠났다. "그런데 마침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갔다." 예루살렘에 왔을 적에 자취없이 사라진 별이 다시 나타났다. ("계시의 진리, 구원의 성사, 성경과 성전을 간수하고 있다는 교회에서 별이 안보일 수 있을까요?" "에끼 이 사람아,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하나? 마태오가 그런 식으로 기록했을 뿐이야!")

 

그들이 구세주를 만나 보았을 적에 하느님의 계시가 내린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들의 지방으로 떠나갔다."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오늘의 아시아인들에게 우리 하느님은 꿈에 무슨 지시를 하고 계실까?)

 

"교회밖에 구원이 있다!"고 감히 말했다가 옛날에는 경을 쳤다. 구세주가 나신 것도 모르던 예루살렘 사람들이 유대밖에 구원이 없으리라 장담했던 대로, 교회는 무엄하게도 구원을 독점했다고 자부했다.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죽어라!" 바티칸 공의회는 겸양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남들은? 하느님이 알아서 하신다!

 

이제 와서 "그리스도밖에 구원 있다!"는 신학적 발언이 슬슬 나오니 순진한 신도와 성직자는 질겁을 하나보다. 우리가 과거 교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런 발언에 내키는대로 대꾸하지 말고 한 세대쯤 기다려야 한다. 사실 입산하여 평생을 수행하는 스님, 알라신께 모든 것을 걸고 사는 마호멧교도에게 "당신은 그리스도 덕분에 구원받는 것이니 그리 아시요?"라고 단언하기는 약간 쑥스럽지 않던가?
(1994. 1. 2: ㉯ 주의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