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여, 기뻐하소서!(?)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여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루가 1,26-38) 
 
"마리아, 너 요즘 어디 아픈 것 아니냐? 꼭 아기선 여자같다."
"엄마, 저 임신한 것 같아요. 아니, 틀림없어요."
"아니 뭐라고? 아이고 이럴 수가? 얘야, 서둘러 요셉한테 알려야겠구나. 네 서방은 물론 알고 있겠지? 짐작이라도 말이다. 그 집에선 얼마나 좋아 들 할까? 식을 서둘러야겠구나. 원 그것도 모르고 우린 맘 편하게..."
"어머니, 그게 아냐요."
"그게 아니라니 무슨 소리냐?"
"그이가 알면 난리나요. 날 죽이려 들 거에요."
"아니 무슨 놈의 소릴 그렇게 하니? 아니 제 자식 만들어 놓고 무슨 염치로 난리는 난리냐? 하기야 좀 겸연쩍기는 하겠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너도 참..."
"엄마, 그게 아니라니까요!"
"뭐?"

심상치 않은 딸의 표정에 어머니 안나의 가슴은 철렁했다. 그 다음 딸의 입에서 쏟아지는 희한한 사연을 듣고 난 안나는 "내 딸 자식이 날짜를 잡고 실성까지 하다니!"라며 가슴을 쥐어짰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집안 망치고 딸 자식 몰매맞아 죽는 꼴 보게 되었으니..." 그날부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백방으로 손을 썼을 안나. 용한 의원한테 말해 두었으니 애를 떼자는 어머니의 호소와 기어코 낳겠다는 딸의 실랑이. 마리아의 쇠고집에 손을 들고 불러오는 배가 이웃 아낙의 눈에 띨세라, 요셉이 눈치챌세라, 서둘러 딸을 멀리 보내 버렸다. 돌계집 나이 쉰이 넘어 기적 같이 아기가 들어섰다고 소문이 짜한 엘리사벳, 그 사촌 언니를 수발하러 보냈다는 핑계까지는 그럴싸한데 그 다음엔 어쩌지? "저 아기 아버지라는 야훼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이후, 이 법은 무려 2천 여만 명의 태아들의 생명권을 빼앗는 대량 학살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 앞에 너무 오랫동안 침묵해 왔습니다. 인권 중에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이 보호되지 않는 한, 그 밖의 다른 인권을 위한 외침은 자기 모순에 불과합니다"(제 12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천체물리 학자의 설명으로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우주는 150억 년의 긴 세월을 두고 준비를 했다는데, 하느님은 작은 구세주가 될 아기를 우리에게 점지했다는데, 영원한 운명을 타고난 아기가 내 뱃속에 깃들었는데, 그 아기를 내 손으로 죽였다니! 자기 뱃속의 아기를 엄마가 죽였다면 신앙의 이야기는, 구원의 역사는 다 끝난 셈이다.

 

마리아는 버티었다. 천사가 아기에게 부여한 거창한 신분과 사명은 둘째 문제였다. 우선 부모와 약혼자와 의원들의 손에서 이 생명을 지켜내야 했다. 미혼모니 간통이니 하는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아니 한 여자의 목숨을 걸고서 살려내야 했다. 그 당찬 처녀의 결단과 용기로 인류는 구세주를 얻었다. 근세사의 위대한 사상가들 거의 전부가 교회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욕하면서도 그 중 어느 한 사람도 감히 미워하지 못한 나자렛 사람 예수! 그는 이러한 곡절 속에 생명을 얻어 왔다. 예수는 질긴 목숨이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남종이든 여종이든 주님의 종이 된다함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녀가 알았을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기뻐하소서?

고향 나자렛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던 숱한 밤에 마리아는 기뻐하셨을까? 요셉이 사연을 알고 자기를 데리러 오기까지 아린카임의 사촌언니집에서 지내던 그 두려운 나날에 마리아는 기뻐하셨을까?

 

해산달이 다 되어 주민등록을 하러 남편 고향까지 따라가던 길, 외양간에서 몸을 풀던 밤, 산모가 초이레도 안되어 마파람 맞으며 야밤 도주하던 길, 뒤에서는 아기들의 비명과 어머니들의 통곡이 들리는데... 내 아기와 한 동네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 생명들이 죽어 가는데...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마리아여, 민중의 사랑스러운 어머니여, 당신 외아들이 처형당하던 저 갈바리아에서도 당신은 기뻐하셨더이까? 말씀하소서!
(1993.12.19: ㉯ 대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