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통일과 바꾸는 사람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마태 16,21-28) 
 
"한총련"! 지난 30년 간 이 나라 기득권자들에게 얼마나 미움받아 온 이름이던가! "집회의 자유"라는 유엔인권선언은 휴짓조각이라고 치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하는 노래는 초등학교에서나 부르는, 철없는 창가로 치자.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고 꼬리치라면 쳐 온 언론이 있다면 어차피 매춘업이니까 논외로 치자. 어느 국회의원 말대로, 오늘의 저 소란이 공안과 공포를 먹이로 유지해 온 수구세력이 돌이킬 수없는 민족사의 진로를 꺾어 보려는 마지막 발악이라고 치자.

 
하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정작 마음이 에이는 것은, 세계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념 전쟁이 8월 내내 이 나라를 온통 휩쓸고, 내노라는 집단들과 지성들이 그 선무대(宣撫隊) 노릇하는 현장을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의 세계든 현실 사회든 증오와 거짓이 판치는 사건이 발생할 적마다 인간들이 그 숨은 속마음을 사정없이 드러내는 듯해서 우리는 "예리한 칼에 찔리듯 마음이 아프다."


"주체사상"이라는 때 지난 이념에 경도하는 학생들 때문에 정부나 언론이 일리 있다고 여기는 독자들 가운데 누가 틈이 있어서, 1986년 6·29 직전에 시민들의 6월항쟁을 보도하던 신문들의 머릿기사와 사설과 박스기사들을 되찾아 본다면, 최근 학생들의 연세대 시위를 전하는 바로 그 신문들의 사설과 보도와 너무도 비슷한 사실에 아연해지리라. 시위현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텔레비전 화면은 80년 5·18 광주학살을 은폐 왜곡하여 보도하던 화면을 연상시킬지 모른다.

 
학생을 자식같이 사랑하고 그 장래를 걱정하노라는 대학 총장들이 내놓는 성명서를 (적어도 언론에 보도되는 문구로) 학부모들이 읽는다면, 과연 총장들이 좌경 학생들을 가르치고 선도할 제자로 보는지 섬멸해야 할 적병으로 보는지 의아해지리라. 전두환과 노태우의 악행을 보고서도 용서와 화해를 설교하던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 참선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인가? '나라 사랑'이니 '민족 화합'이니 하는 단체명을 곧잘 쓰는 이 나라의 어른들이 먹을 것, 마실 것 없이 갇혀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도 침묵하였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가?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이 굳이 아니더라도 제 목숨 아까운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누구를 두고 "범민련, 한총련, 조통위, 친북세력"이라는 고함이 웽웽거릴 때마다 우리로서는 십자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관변언론과 집권자들에게 욕 얻어먹는 사람들 어깨에 십자가가 매어져 있는지 보아야 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야 그럴싸하지만, 억지로가 아니면 십자가는 죽어도 지지 않을 우리다. 그러니까 누구의 등에든 십자가가 지워져 있거든 우리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욕설을 참는 편이 좋다. 최루탄 가스 마시고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퇴학맞는 것, 수배당한 몸으로 도망 다니는 것, 감옥에 끌려가서 고문당하는 것, 그리고는 평생 빨간줄 그어져 취직도 사업도 못하여 아내와 자식을 못 먹이고 고생시키는 것, 심지어 전경의 곤봉에 맞아 죽거나 최루탄이 얼굴에 박혀 죽거나 고문 받다 죽거나 손발이 묶여 강물 속에 던져져 죽는 것은 엄연히 십자가다!

 
더군다나 "민족 통일, 노동자의 권리, 철거민의 주거, 교사들의 노동조합, 핵발전소 건립 반대" 등의 죄목은 "4천억 부정축재, 7천억 부정축재, 5·18 시민학살, 12·12 군사반란"보다 죄질이 가볍다. 그런데도 신앙인이라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이 후자(後者)의 범인들에게는 하느님처럼 관대하면서 저 젊은이들의 멱을 자기 손으로 따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아 마음 저민다.


"범법자고 빨갱들이니까 고생하거나 죽어도 싸다?" 그래?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받드는 분이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사형당한 일은 어쩌고? 그리고 로마 제국에 반역한 죄명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죄수를 우리는 구세주로 섬기고 있는데?

(1996. 9. 1: ㉮ 연중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