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당신은 왕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왕이오?"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합니다." (요한 18,33-37)
 
 
교회 달력으로 한 해가 끝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나자렛 사람 예수를 "왕중왕(王中王)"으로 떠받드는 하루가 오늘이다. 그리고 한두 주일 전후하며 이 왕은 인류 역사의 종말에 집행할 공심판을 예고하신다. 아담에서 시작해 인류의 맨 꼴지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태중의 아이까지 전부 두 줄로 갈라 세워 심판을 하신 다음 판결문을 낭독하신다. 그 판결문이 바로 그 판사의 입에서 미리 공표되었으므로 우리로서는 미리 대처하기가 쉬워진 셈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지 않았을 때마다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도 여러 번 들어 줄줄이 외우는 구절이다.

 

"에이, 요컨대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이겠죠. 남한테 잘하라는 뜻이겠죠. 실천이야 별도 제고요.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다 실행합니까?" 글쎄다. 원칙에 그친다면 모두가 편하겠는데, 만에 하나라도 저 두려운 날에 글자 그대로 집행하신다면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이천 년 전 미리 하신 말씀이라 몰랐다고 발뺌을 할 수도 없고, 교회의 사회교리도 그리 가르쳤는데...

 

그리스도를 왕이라 한다면 왕국이 있으리라. 허나 성서에 그 분의 왕국이라 지칭하는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는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예수님 역시 수수께끼 같은 분이라 항상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분이니 제 편한 대로 알아듣는다.

 

사람은 사랑하기 마련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대로 "내 사랑은 내 실존의 중심(重心)이다." 문제는 그 중심이 어디에 잡혀 있냐다. 수천 만원에서 수십 억 원까지 공금을 꿀꺽꿀꺽 삼키는 인천 세무 공무원들, 처자식을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내려앉을 성수대교를 세우고 내려 안을 줄 뻔히 알면서도 수리 않는 서울시 공무원들, 그들도 대통령 체면을 살려주는 충신이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광주시민 대학살을 일으켜 온 범죄자를 "국가 유공자라서 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경찰이야말로 힘센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충신이다.

 

다만 없는 것은 '사랑의 질서'이다. 이 질서에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기도 하고 멸망할 지상의 나라에 속하기도 한다. "하느님과 국민을 멸시할 지경에 이르는 자기 사랑! 자신을 비웃을 줄 아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그러니 그리스도의 나라는 각자의 실존적 결단, 집단적 결의로만 알 수 있다. 그 나라를 아는 방도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길뿐이다.

 

글쎄, 그러니까 사랑의 질서 운운하는 당신은 왕이오? 94년도 한국 검찰총장의 추궁에 나자렛 사람은 인류사의 기막힌 수수께끼 하나를 내린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하는 사람은 내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에 접근하는 사람은 내 말 뜻을 압니다. 소박한 서민의 양심에 따라 진실을 사랑하면 내 말 뜻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매춘 언론을 대변인으로 내세워 집권자들은 묻는다. "진리가 뭣이오?"
(1994.11.20: ㉯ 연중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