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적의 뜻일랑...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마태 14,13-21)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런데 식구는 남자만도 오천 명이라... 당신 입으로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악마한테 큰소리치던 분이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무엇 때문에 하셨을까? 양곡업자들 어찌하라고? 성령업자들 어찌하라고? 선거철도 아닌데... 당신 기적의 뜻이 도대체 무엇일까?

 

지난 한 달 간 조선일보를 읽어본다면, 이북에서는 인민 전체가 아사직전의 지옥이고, 그 정권은 붕괴 직전의 말기 현상이며, 하루에 수십 수백 명씩 굶어 죽고 있단다. (그래서 조금 있으면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고 당원들이 인민을 생으로 잡아먹을 아비규환이 도래할 듯하여, 남한 땅 보수주의자들이 구경거리를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렷다.)

 

주님이라면 사태를 보다못해 "측은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궁리를 하실 법하다. 오늘 복음의 기적처럼.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노라는 이남의 신도들 가운데 상당수가 목구멍에서 이런 소리를 갈강거리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좀더 쫄쫄 굶어 봐야 해! 그래서 견디다 못해 김정일 정권에 아귀떼로 덤벼서 공산 정권을 무너뜨려야 해! 그때까지는 쌀 한 톨도 주어서는 안돼! 이북에 식량 주자는 놈들은 모조리 빨갱이들이야!" (이런 속마음을 남에게 발설하거나 설교하거나 글로 쓰는 자들의 머리에 하느님께서 활활 타는 숯불을 얹어 주시기를!)

 

그래도 입교해서 한 가닥 양심이라도 배웠다는 이들은 "오 주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북에 먹을 것을 보내 주소서!" 라고 기도나마 할 줄 알리라. 그러나 이런 신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오늘 복음 말씀 그대로 "그럴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대답하실 것이 뻔한데, 한국 가톨릭 교회가 조직적으로 이북 동포를 위해 식량 모으기를 한다는 소식은, 적어도 오늘까지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예언자 같은 대담한 마음을 지닌 사제를 주임으로 둔 몇몇 교회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사회단체에서만, 그나마도 보수층 신도들이 발광하며 욕설을 퍼붓는 속에서, 공안당국의 별의별 치사한 훼방 속에서, 모금을 하고 북한에 식량과 돈을 보내는 중이다.

 

오늘 봉독하는 마태오 복음서를 요한 복음서의 빵의 기적과 대조해서 읽는다면, 내 개인에게도 기적의 의미가 선명해지는 듯하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성당 가면 마음의 평화 주시고 건강 주시고 영육간의 복 주시는데, 육신의 빵으로 배부른 사람들에게 영혼의 빵마저 배불리 먹여 주시는데... 우리의 영성체 입맛을 싹 버려놓는 작자들 누구냐?

 

어느 주교님 말씀마따나 "예수님이 언제 가난 구제에 나섰으며, 언제 교도소 방문 가신 적 있었느냐? 언제 노동 해방 외치셨고 언제 정의구현 데모하셨느냐? 성경에서 그런 구절 찾아 보여줄 사람 있으면 나와 봐! 성령도 못 받은 것들 같으니라구..."

 

사람들이 나눠 먹을 마음만 있으면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리라. 그런데 반공이라는 증오에 병걸리고 나니까 신앙인들마저 이북의 동포들이 굶어 죽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리떼로 둔갑하고 말았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마태 24,28)

 

그래선지 서기 3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유신론자들을 이렇게 비웃었다.

"종교심이 이기심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한, 종교 따위는 아무한테도 남아 있지 못한다는 사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1996. 8. 4: ㉮ 연중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