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 찾아 온 축하객 세 무리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들의 지방으로 떠났다." (마태 2.1-12)
 
 
머언 옛날 미소년 다윗이 양치고 뿔피리 불던 베들레헴... 겉보기로는 유다에서 가장 초라한 마을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밤이 대낮처럼 밝던 밤부터 시작하여 공수특전단이 들이닥쳐 갓난아기만 찾아내 죽이던 희귀한 학살이 벌어지기까지 한달 가량 베들레헴에는 기이한 손님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베들레헴 근방 토박이, 동방에서 왔다는 외국인, 예루살렘 상류층... 그런데 그들의 언행도 제각각 이었다.

 

"여러분을 위해 구원자가 나셨습니다."는 소식에
[토박이]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
[외국인] "그들은 별을 보자 기쁨에 넘쳐 대단히 반가워했다."
[예루살렘] "헤로데 왕은 물론 그와 함께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렸다."

 

"베들레헴이 바로 그곳"이라는 뉴스가 나가자,
[토박이] "베들레헴으로 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일이 일어난 경위를 알아보자." 그리하여 서둘러 가서는...
[외국인]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나갔다."
[예루살렘] "점성가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확히 알아보고 (음모를 꾸민다)."

 

마침내...
[토박이]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를 찾아냈다."
[외국인] "아기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절하였다."
[예루살렘] 그들에게 "가서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찾거든 내게도 알려 주시오."

 

끝으로...
[토박이] "이 모든 일을 기려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면서 돌아갔다."
[외국인] "보물 상자를 열어 그분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예루살렘] "사람들을 보내어, 점성가들에게 정확히 알아보았던 때를 대중삼아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또래와 그 아래 아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세 가지 선물! 가난한 목자들도 빈손으로 갔을 리는 없다. 양젖이나 치즈 혹은 젖이 퉁퉁 불은 암양 한 마리를 선물하며, 산모의 젖이 딸리거든 아기에게 먹이라고 했을 법한데... 황금과 유향, 몰약은 이집트 피난살이 시절 살림 밑천이 되거나 아기의 치료제로 쓰였을까? 그리고 헤로데의 선물은... 군대, 학살, 통곡과 한...

 

"라마에서 소리가 들리니 울음과 통곡이 애절하구나. 그 자식들 때문에 우는 라헬..."(마태 2,18). 그 통곡 소리를 듣지 못하던 예루살렘 대제관과 율사들... 지난 가을 주교회의까지 주교들의 귀에도(소수를 빼놓고는), 사제들의 귀에도 들리지 않던 전라도 광주의 통곡 소리가 떠오른다. 집권자에게 불리한 모든 소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입을 다물어 왔던 한국 천주교…. "병 고친 다음 사람 죽인다."고, 5·18 광주의 한을 풀어 주는 척하던 집권자는 결국 광주의 꿈을 짓밟는 또다른 학살을 저지를지도 모르는데...

 

주의 공현대축일은 과연 주님의 나타나심인가? 오히려 우리의 나타남, 우리 정체의 공공연한 폭로가 아닐까? 민주화, 민족정기 바로잡기, 시대 교체라는 구호 속에 추루한 정치적 이기심과 음모가 폭로되는 순간이 아닐까?   (1996. 1. 7.: ㉮ 주의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