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두레] 시론 1993.6.20

 

가톨릭의 진보적 정론지가 필요하다!

 

가톨릭 정론지가 필요하다. "바람이 불고 싶은대로 불듯이" 당신이 바라시는대로 땅의 얼굴을 바꾸어 놓으시는 성령의 참신한 역사하심을 하느님의 백성에게 홍보하는 새로운 매체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교와 그 복음이 됫박밑에 엎어둔 등잔이 되지 않고 백두에서 한반도를 두루 비추는 "민족의 빛"으로 드러내는 등잔이 필요하다. <가톨릭신문>과 <평화신문>과 더불어, 또 두 언론매체를 보충하여 한국 가톨릭의 여론을 진보적으로 인도하고 통일된 조국의 미래와 교회를 준비하고 받아들일 새로운 주간신문이 필요하다.

 

지난 5년을 돌이켜 보건데, 6.10 항쟁 이후의 잠시간의 여유 때문에 사회와 교회내 진보세력이 긴장과 신중함을 잃고 있는 동안, 정권과 교계의 보수세력이 얼마나 치밀한 공작과 계획에 입각하여 가톨릭의 보수화를 추진하고 성사시켰는가를 우리는 오늘날 목격하는 중이다. 한두 지방교구를 빼놓고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교계와 평신도 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모든 언론매체에서 진보적 가톨릭 인사들은 배제되고 축출당해왔다(모교구내의 진보적 성직자들이 일정한 지역으로 한데 격리되어 있음을 보라!). 또 참신한 가톨릭 언론을 주창하고 설립된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은 그야말로 순수한 전도매체로서 정착되고 말았다. 그리고 소위 문민정부의 종교계의 방송 넷트워크 확장에서 그나마 <평화방송>의 광주방송국이 배제되었다.

 

교구장 임기제가 없는 현행 교회법상으로는 교구장의 사상적 경향과 절대인사권에 모든 것이 장악되어 있는만큼, 뜻있는 가톨릭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별도의 언론 매체를 설립하여 자유로이 운영하는 길밖에 없겠다. 신자 대중에게 접근하고 교회 전체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매체는 역시 주간지여야 한다.

 

그런데 주간 신문사 하나를 설립시키는 막대한 자금과 준비 기간을 생각한다면, 우선 가톨릭 교회의 진보적 사상을 펴는 학술적인 성격의 정론지를 먼저 창간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월간지가 어려우면 계간지 발행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금년 연말까지 창간을 보기로 추진하고 있는 잡지는 우리가 말하는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리라 여겨진다. 사회와 민족 문제에 선구적인 가톨릭 인사들의 접근과 집필을 봉쇄하는 교계의 블랙리스트가 따로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상 그들은 지난 5년간 한국 가톨릭 언론매체로부터 발언과 집필을 거의 봉쇄당해 왔다.

 

아울러 제언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매체와 더불어 매체의 탄생과 탄생후 매체 편집과 운영을 이끌어갈 연구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기로 학력과 실력을 갖춘 상당수 청장년들이 교회의 쇄신된 모습을 구현하고자 교회 가까이 남아서 투신하고 있으므로, 이런 귀중한 인력이 분산되기 전에 총동원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학식과 헌신을 지혜롭게 엮어내면 사제들의 사목활동도 커다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본당사목을 위한 설교, 강화, 신자 재교육, 예비자 교육, 주일학교 운영에 사용될 각종의 사목자료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청장년들과 다른 인사들이 이 연구소의 설립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그 일이 성사되려면 평신도운동의 지도자들, 재력있는평신도들, 일선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성직자들의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의 지도급 사제들은 환갑 연령에 임박하고 있다. 진보적 평신도 지도자들은 고희에 육박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터이므로" 70년대부터 이 나라 역사의 진로를 좌우해온 분들의 노력이 교회 안에 계승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톨릭 신문>을 창간시킨 당대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회고하고,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을 탄생시킨 서울 교구의 활동을 상기한다면, 여건은 다르고 불리하더라도, 뜻있는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전국적으로 나선다면 주간신문과 정론지를 펴낼 신문사, 또 이를 뒷받침할 연구소의 설립도 가능하다고 본다. "지나가버리시는 하느님을 나는 두려워한다(Timeo Deum transeuntem)."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이다.